‘반도체 이후 한국을 먹여살릴 업종’으로 지목되며 2017~2018년 고공행진을 펼쳤던 2차 전지주가 올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매력이 떨어진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된 게 ‘직격탄’을 날렸다. 올해 초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는 2차전지 셀 업체 LG화학(-3.41%), SK이노베이션(-2.36%)과 소재 회사인 일진머티리얼즈(-18.65%) 등 관련 종목들이 대거 약세를 보였다. 이들을 포함해 상당수 종목들은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75%)에 크게 못미치는 ‘성적’을 냈다.

코스닥에서도 포스코케미칼(-10.81%), 엘앤에프(-30.02%), 에코프로(-25.97%) 등 소재주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LG화학(편입비중 20.5%) 삼성SDI(16.7%) SK이노베이션(15.2%) 등 2차 전지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KODEX 2차전지산업’은 올 들어 10.46% 하락했다.

밸류에이션 매력이 떨어진 게 조정의 근본 요인으로 꼽힌다. 셀 업체 가운데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 달리 2차 전지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SDI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18.8배다. 코스피 평균(11.0배)보다 훨씬 높다.

소재 관련 종목인 유가증권시장 일진머티리얼즈의 12개월 선행 PER은 24.4배, 코스닥 포스코케미칼은 19.7배에 달한다. 2차 전지주처럼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아 실적 대비 높은 프리미엄을 적용받는 성장주들은 변동성이 커질 때 가치주들보다 타격을 더 크게 받는 경향을 보인다.

ESS 화재 관련 불확실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투자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ESS 화재는 최근 1년간 20여건 발생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매분기 실적개선 추세를 보였던 LG화학 전지사업부는 1분기에 ESS 관련 충당금 1000억원을 쌓는 바람에 147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 동기대비 적자전환이다.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의 조정을 2차 전지주 매수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2차 전지 사업의 성장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해 작년보다 11.2% 늘어난 794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케미칼(올해 영업이익 예상 증가율14.8%) 일진머티리얼즈(35.5%), 천보(36.6%), 솔브레인(6.7%) 등도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관측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정부가 구성한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에서 6월 중 내놓을 조사결과와 대책에 따라 2차 전지 관련 주들이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연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단기 악재에도 성장성에 문제가 없는 만큼 2차 전지 관련 종목의 최근 주가 조정은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