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대주주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식이 아니라 현금을 증여하고 있다. 현금도 주식처럼 최대 50% 증여 기본세율을 물어야 하지만 증여세 할증 부담을 피할 수 있어서다. 보유 지분이 취약한 대주주들은 주가가 저평가 구간으로 접어들 때마다 현금을 증여해 장내에서 지분을 사도록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증여세 부담을 줄이면서 원활하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미리 대응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권 승계 고육지책…대주주 '현금증여 바람'
주가 급락하자 현금 증여 후 매수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몽진 KCC 회장은 딸인 정재림 씨(29), 아들 정명선 씨(25)와 함께 회사 주식 2만1639주(0.21%)를 지난 16일부터 장내 매수했다. 이로써 정 회장은 보유 지분을 18.40%로, 재림씨와 명선씨는 각각 0.29%, 0.62%로 확대했다.

이번 장내매수에 사용된 자금은 전체 60억원. 이 가운데 자녀들은 매입자금 35억5000만원을 정 회장으로부터 현금 증여를 받아 마련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에도 재림씨에게 장내매수 자금 30억원을 증여했다. 재림 씨는 지난달 신규 임원(이사대우)으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현금 증여→장내매수’ 방식은 KCC와 같이 대주주 지분이 취약한 상장사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KCC 대주주 일가 지분은 전체의 39.36%에 이르지만 정 회장 개인 대주주 지분은 많지 않다. 자칫 지분을 증여했다가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지분도 확보하기 어렵다.

KCC그룹의 형제 경영 체제가 언젠가 끝날 것이란 점을 감안해 정 회장 일가는 KCC 주가가 빠질 때마다 현금 증여를 통해 승계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게 증권업계 해석이다. 이번 대주주 일가 지분 확대도 KCC 주가가 갑작스럽게 20% 이상 빠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한 증권사 가업승계 컨설팅 전문가는 “미리 정해놓은 구간으로 주가가 접어들면 현금 증여와 장내매수를 병행해 승계를 준비하는 대주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인 대동공업과 코스닥 상장기업인 오공의 대주주도 각각 자녀들에게 현금 증여를 통해 회사 지분 매입을 지원했다.

증여세 할증 적극 대처

현금 증여도 주식 증여와 세율이 똑같다. 30억원을 넘는 금액에 대해선 50%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주식과 달리 증여세 할증은 피할 수 있다. 주식을 증여할 때는 최대주주 보유 지분이나 회사 규모에 따라 증여세가 10~30% 할증된다. 최대주주 보유 지분이 50%를 넘는 대기업은 증여세가 30% 할증된다. 실제 증여세율이 50%가 아니라 65%가 적용된다는 얘기다.

편의점 CU 브랜드를 거느린 BGF 대주주는 합법적으로 최악의 증여세 할증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현금 증여를 활용했다. 현금을 증여해 대주주 지분을 사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홍석조 BGF 회장과 양경희 씨 부부는 장남인 홍정국 BGF 부사장(37)에게 보유 지분 9.51%를 지난주 시간외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팔았다. 아들에게 매입자금 690억원의 상당수를 현금 증여해주고 지분 일부를 넘긴 것이다. 이로써 홍 회장은 보유 지분을 53.54%로 낮추고, 홍 부사장은 지분을 10.33%로 확대했다.

부모인 홍 회장 부부는 양도세와 증권거래세를 내야 하는 부담이 생기지만 30%에 달하는 증여세 할증 부담은 지지 않아도 된다. 양도세율 27.5%(3억원 초과분)가 적용되지만 주식을 증여했을 때 물어야 하는 증여세 부담보다 덜하다.

한 세무사는 “과도하게 높은 증여세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지 대주주들의 고민이 많다”며 “보유 지분이 높으면 증여세 할증이 부담되고 보유 지분이 낮으면 자칫 경영권 승계 자체가 어려울 수 있어 미리 준비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