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 '3전4기' 끝에 발행어음 사업자 된다
KB증권이 3전4기 끝에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사업) 자격을 획득했다.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에 이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IB) 중 세 번째로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양강 체제였던 발행어음 시장이 3파전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8일 정례회의에서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 안건을 통과시켰다. 금융위는 오는 15일 정례회의를 열고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승인을 확정할 예정이다.
KB증권 '3전4기' 끝에 발행어음 사업자 된다
발행어음 사업을 하기 위해 2년 넘게 기다렸던 KB증권은 네 번째 도전 만에 자격을 얻게 됐다. 이 증권사는 2016년 말 현대증권과 합병하면서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불려 단기금융업 자격 요건을 갖췄다. 이듬해 7월 금융당국에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합병 전 현대증권이 자전거래로 영업정지를 받은 전력이 걸림돌이 됐다. 지난해 1월 인가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그해 5월 제재 효력이 만료돼 기회가 왔지만 얼마 후 직원 횡령사건이 발생하면서 인가 재신청 시기를 12월로 미뤘다.

증선위가 지난달 KB증권의 발행어음 인가 여부를 안건으로 다뤘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보류했다. 국민은행 채용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10월 국민은행 전 부행장과 인사팀장, HR(인사관리) 총괄 상무가 청탁받은 지원자들에게 채용 특혜를 제공하고 이들의 서류전형 평가점수를 인위적으로 높인 혐의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받았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당시 채용비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민은행 채용비리 의혹이 증선위에서 쟁점이 됐다”며 “검찰이 윤 회장을 불기소 처분한 데다 이에 불복한 항고도 기각된 것을 고려하면 KB증권에 단기금융업 인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KB증권은 다음달 발행어음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1조8000억원어치의 어음을 발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단기금융업 자격이 있는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KB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3770억원이다.

발행어음으로 확보한 ‘실탄’은 중소·중견기업 대출 등 기업금융에 적극 투입할 방침이다. 단기금융업을 하는 증권사는 어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절반 이상을 기업금융에 써야 한다. KB증권은 채권발행 주관 분야에서 6년간 선두를 달리고 있고, 지난해 처음으로 기업어음(CP) 인수 분야에서 1위에 오르는 등 기업금융 시장에서 쌓은 경쟁력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고금리를 앞세운 공격적 영업은 지양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75%로 올리면서 고객들의 목표 수익률은 높아진 반면 경기하강 전망에 주요 확정 금리상품의 수익률이 내리막을 타고 있어서다.

KB증권은 발행어음 금리를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양사 모두 최고 연 3%)보다 낮은 연 2% 안팎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성현 KB증권 사장은 “발행어음 금리를 높게 제시하면 그만큼 운용 수익을 낼 만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금리와 투자수요 등을 고려해 발행어음 금리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KB증권의 등장으로 발행어음 시장 규모가 연내 1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액은 4조2355억원(지난해 말 기준), NH투자증권은 3조1773억원(7일 외화어음 포함 기준)이다.

나머지 초대형 IB인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은 당분간 발행어음 인가를 받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미래에셋대우는 장기간 진행 중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조사가, 삼성증권은 삼성그룹 재판과 지난해 발생한 우리사주 배당사고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