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서울대 교수 "기술개발에 세일즈까지 나아가야 창업 성공"
“수년간 고생한 연구 결과가 논문 실적을 쌓는 수준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연구실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연구를 기술화하는 과정은 물론 이를 직접 세일즈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22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기원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45·사진)는 “이제 연구자들도 연구실 창업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10년 넘게 콩을 연구해 ‘콩박사’로 유명한 이 교수는 친환경 두유인 ‘약콩두유’를 개발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끄는 등 ‘연구실 창업’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가 창업한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밥스누는 2015년 국내산 약콩(쥐눈이콩)과 대두로 약콩두유 생산을 시작했다. 약콩두유는 설탕과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은 자연스러운 맛으로 출시 첫해 500만 팩이 팔렸다.

이 교수는 밥스누 대표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뒤 연구개발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약콩두유 제조 노하우를 활용해 각종 식물성 음료와 탈모 방지 샴푸 ‘약콩모’ 등을 개발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믿을 수 있는 건강한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약콩두유를 만든 건 콩과 맺은 남다른 인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콩과 가까웠다. 그의 할머니가 40년 가까이 서울 강남구에서 콩 음식점 ‘피양콩할마니’를 운영했기 때문. 미쉐린 가이드가 뽑은 서울의 ‘가성비 맛집’ 중 하나로 선정된 곳이다. 농심과 손잡고 ‘콩라면’ 등을 연구한 경험도 창업에 도움이 됐다.

그의 창업정신은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더플랜잇의 양재식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양 대표는 지도교수인 이 교수의 권유로 아이템을 개발한 뒤 2017년 계란 우유 육류 등 동물성 원료를 식물성 원료로 대체해 식품을 생산하는 더플랜잇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롯데 액셀러레이터 등 3개사로부터 15억원 규모의 공동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실 창업이 늘어나려면 연구실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대학 연구실이 기업의 고충을 해결하는 일종의 솔루션 센터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죠. 응용학문인 공대, 농대는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논문으로만 평가받는 문화가 아쉽습니다.”

이 교수는 “대학과 기업이 서로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아 성과를 내면 기업은 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이 자리잡아야 연구실 창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