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분기 실적 시즌이 시작됐지만 주식 시장은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 ‘간판기업’인 삼성전자LG전자가 8일 ‘어닝 쇼크(실적 충격)’ 수준의 실적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상장사들의 실적 추정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센터장은 “삼성전자 등 이미 악화된 실적이 주가에 반영된 기업보다 가려져 있는 회사들이 문제”라며 “당분간 곳곳에서 숨겨진 폭탄이 터지는 ‘지뢰밭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한 실적 시즌…'지뢰밭 장세' 오나
우울한 실적 시즌 개막식

8일 코스피지수는 11.83포인트(0.58%) 내린 2025.27에 마감했다.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자가 각각 87억원, 25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놓자 투자 심리가 악화됐다.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은 증권사 컨센서스(추정치 평균)인 13조5300억원보다 훨씬 낮다. LG전자 영업이익도 753억원으로 증권사 컨센서스(3981억원)를 한참 밑돈다.

증시 전문가들은 남은 실적 발표 기업이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컨센서스가 있는 157개 회사의 4분기 영업이익은 40조5155억원으로 추정된다. 3개월 전 추정치(47조1190억원) 대비 14.0% 감소했다. 1개월 전(44조2436억원)보다도 8.4% 줄었다. 회사들이 통상 4분기에 일회성 비용을 떨어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200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컨센서스가 하향 조정됐다”며 “일회성 비용 등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기보다 경기 둔화를 반영하고 있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물동량 감소, 경기 둔화 및 수요 감소에 따른 국제 유가 하락 등에 영향을 받은 업종의 추정치 하락폭이 컸다. OCI의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3개월 전보다 83.0% 줄었고 에쓰오일(39.7%), 셀트리온(45.5%), 아시아나항공(23.7%) 등 업종 대표 기업의 실적 추정치가 낮아졌다.

1분기가 더 문제 vs 바닥 잡았다

올해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컨센서스가 있는 기업의 영업이익은 31조1345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3개월 전 전망치(37조7387억원)보다 17.5% 줄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4분기 실적이 줄어도 1분기에 반등하는 모양이면 괜찮은데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빠보이는 게 문제”라며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실적 전망치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극심한 불황이 닥치지 않으면 이익 추정치가 추가로 감소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의 수출이 급감하거나 국제 유가가 급락하지만 않으면 실적 전망 비관은 잦아들 것”이라며 “주가도 1분기를 바닥으로 2분기부터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오 센터장은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 각국 정부의 재정·통화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당장 기업 실적이 좋아지기보다는 정부 정책에 따른 주가 반등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