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18일 오후 4시30분

국내 벤처캐피털(VC) 운용사인 A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B사의 창업 자금을 지원했다. 그 자금으로 기술 개발을 끝낸 B사는 1년 뒤 시제품 생산을 위한 추가 투자가 필요했다. B사의 성장을 확신한 A사 심사역들은 후속 투자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후속 투자를 하려면 펀드 출자자 총회를 열어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약 때문이었다. 연기금 등 여러 출자자가 각자 내부적으로 투자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두 달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투자 기회는 의사결정이 빠른 해외 VC에 넘어갔다.

[마켓인사이트] 벤처캐피털 '투자 족쇄' 대폭 풀려
앞으로는 국내 VC들도 더 빠르고 쉽게 후속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최대 VC 출자기관 한국벤처투자가 운용사의 투자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신규약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투자는 이번 규약을 2020년까지 20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키우는 초석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신규약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는 한 회사에 투자하는 금액을 펀드 설정액의 20% 이내로 제한하는 ‘동일기업 투자한도’를 없애기로 했다. 기존에는 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면 한 회사에 20억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었다. 이미 투자한 기업에 후속 투자를 진행할 때에는 출자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도 폐지키로 했다.

VC업계 관계자는 “쿠팡,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은 해외 VC로부터 몇 차례의 추가 투자를 받아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국내 VC들도 적극적인 후속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유니콘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년 혹은 4년으로 제한된 펀드 투자기한도 모두 없애기로 했다. 기존에는 만기가 7년인 펀드를 만들면 4년 내 투자집행을 완료해야 했다. 기업의 투자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데 제약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합원 총회를 대체하는 자문위원회 제도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회계감사인 선임 △중간배당 △회수금 재투자 등 중요한 사항만 조합원 총회에서 의결하고 나머지는 주요 출자자만 참여하는 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형철 한국벤처투자 사장은 “모태펀드는 민간 주도의 규제 혁신을 지속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