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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으로 유명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에 진입한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방시혁 대표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독립해 설립한 이 회사는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L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VC) 지원을 받아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워냈다. 빅히트는 최근 장외시장에서 1조원 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에스엠, JYP, YG엔터테인먼트 등 빅3 상장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시가총액을 웃도는 수준이다.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는 2015년 출범 당시만 해도 사업성이 불확실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이 회사는 국내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최초로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신규 증권사 설립까지 추진하면서 기존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 회사 성장 뒤에도 초기부터 투자를 아끼지 않은 알토스벤처스, KTB네트워크 등 VC 지원이 있었다. 적자 상태 기업의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베팅한 VC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지나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빅히트·토스·배달의민족…'유니콘' 뒤엔 VC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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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을 키운 마중물 ‘모태펀드’

올해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벤처투자에 투입된 돈은 총 3조원이 넘는다. 벤처생태계 육성을 위한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혁신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모태펀드 출자예산을 8300억원으로 늘렸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자금은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사다리펀드), 산업은행 등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흘러나온다. 이들이 우수한 VC를 선발해 자금을 투입하면 VC는 이 돈으로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이 중 가장 큰 정책금융기관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8개 정부 부처에서 출자받은 자금을 VC에 투입한다. 모태펀드는 2005년 출범한 후 올 9월 말까지 총 4조297억원을 벤처펀드에 출자했다. 여기에 14조3087억원의 외부 출자금도 끌어들여 총 20조1222억원 규모 펀드가 조성됐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출자펀드는 벤처생태계 육성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모태펀드가 운용 중인 출자펀드는 478개, 운용자산은 16조4191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조성된 VC의 펀드자금은 유니콘을 키우는 데 쓰인다. 빅히트가 대표적이다.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 회사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한 LB인베스트먼트는 한국벤처투자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투자자’로 선정됐다. LB인베스트먼트는 구주 매각으로 약 15배가 넘는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VC 발판 삼아 도약하는 기업들

프리미엄 신선식품 직배송 서비스를 내건 마켓컬리(사명 더파머스)도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 등의 출자금이 흘러들어가 성공을 거둔 사례다. 이 회사는 2015년 아이디어 단계에서 DS자산운용, DSC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5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에도 국내 1위 VC인 한국투자파트너스가 모태펀드 등의 출자를 받아 후속 투자를 감행해 성장을 도왔다.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도 모태펀드 자금을 받은 IMM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성장에 날개를 단 대표적 기업이다. 배달의민족은 기업 가치가 3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하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우아한형제들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며 “동남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면 이 회사 미래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평가했다.

5조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게임회사 블루홀도 2009년부터 모태펀드 자금을 받아 집행하는 VC들의 돈 372억원을 받으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회사다. VC들은 네오위즈게임즈 공동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을 비롯한 개발 인력의 경험과 전문성 등 이 회사 미래 가치를 보고 적자 기업에 베팅해 성과를 냈다.

안정적 수익 창출, 기업 고용 창출도 늘어

미래 가치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그만큼 큰 손실 부담을 안는다. 하지만 벤처투자가 한탕을 노리고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VC의 운용 노하우가 쌓이면서 꾸준한 초과 수익을 달성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벤처투자가 설립된 이후 안정적으로 자금이 시장에 공급되면서 양질의 벤처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모태펀드가 출자한 펀드들은 평균 10여 개 기업에 분산 투자한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기업에서 약 70%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동시에 나머지 절반인 5개 기업이 약 2.3배 수익을 올리며 손실을 만회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펀드 전체는 약 1.52배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 등의 자금을 받은 스타트업들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고용 창출 우수 사례로 거론되는 단골손님이다. 첫 투자를 받은 2011년 16명이었던 직원이 올해 1000명을 돌파했다. 다방면으로 뻗어나간 사세 확장에 힘입어 올 들어서만 400여 명을 충원한 결과다.

올해 세콰이어캐피털 등으로부터 6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마켓컬리도 56명을 신규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도 최근 2년간 기존 21명인 직원을 61명으로 늘렸다. 차량 부품업체 이씨스는 올 상반기 4차 산업혁명 펀드 등으로부터 7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차 관련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고용 인원을 186명에서 234명으로 늘렸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서 1조3281억원의 벤처투자를 받은 550개 기업의 고용 인원은 지난해 말 1만7338명에서 지난 6월 말 1만9456명으로 늘어났다. 불과 6개월 만에 2118명이 벤처기업에서 새 일자리를 구한 셈이다. 특히 올 상반기 모태펀드 투자를 받은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 156개는 고용 증가율이 27.5%에 달했다.

이지훈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