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계좌에 상장지수펀드(ETF)를 담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일반 주식형 액티브 펀드에 비해 운용 보수가 저렴해 장기투자에 적합해서다. ETF에 대한 퇴직연금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증권사도 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ETF 종류를 늘리고 있다.

운용보수 액티브형의 4분의 1

퇴직연금 투자자 'ETF 바람'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퇴직연금 투자자들이 ETF에 투자한 금액은 844억원으로 집계됐다.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에서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한 고객이 ETF에 투자한 금액을 합산한 수치다.

이들 증권사의 지난해 말 기준 DC형과 IRP 적립액(6조6261억원)을 비교하면 1.2% 수준으로 규모는 아직 작다. 하지만 지난해 말 퇴직연금 계좌의 ETF 투자금액(432억원)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어서 증가세가 가파르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ETF 투자가 가능해진 건 2012년부터다. 당시엔 주식형과 혼합형만 허용됐다. 2016년 7월에는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합성 ETF에도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퇴직연금에서 ETF를 활용해 해외 시장에도 분산투자할 수 있게 됐다. 증권사별로 투자할 수 있는 상품 수가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대형 증권사는 퇴직연금에서 국내외 증시에 투자할 수 있는 ETF 상품 구성을 갖추고 있다. 단 기초 지수가 떨어질 때 수익을 내는 인버스 ETF와 기초 지수 하루 등락폭의 두 배만큼 수익률이 움직이는 레버리지 ETF는 연금 계좌에 담을 수 없다.

퇴직연금 투자자들이 ETF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운용 보수가 저렴해서다. 공모펀드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연평균 운용 보수는 1.29%다. 주식형 ETF는 4분의 1 수준인 0.33%다. 매니저가 품을 들여 종목을 선별하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와 달리 ETF는 지수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ETF 서비스 늘리는 증권사들

장기로 자금을 굴릴수록 수수료 차이가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커진다. 김성일 KG제로인 연금연구소장은 “미국 등 퇴직연금 시장이 발달한 연금 선진국에선 보수가 저렴한 ETF로 자금을 굴리는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매매 수수료와 세금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해외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할 때 일반 주식 계좌에서 투자하면 15.4%를 배당소득세로 낸다. 반면 퇴직연금에서 같은 상품에 투자하면 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에 발생한 이익에 대해 연금소득세 3.3~5.5%만 내면 된다. 또 보통 ETF를 거래할 때는 증권사에 매매수수료를 내지만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매할 땐 수수료가 없다.

퇴직연금 투자자들이 ETF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증권사들도 연금 계좌에서 ETF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넓히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2012년 가장 먼저 퇴직연금 ETF 매매 서비스를 도입한 데 이어 신한금융투자 삼성증권 등도 시스템을 갖췄다. 지난해엔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올해는 한국투자증권이 ETF 매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투자할 수 있는 상품 수는 증권사마다 다르지만 통상 200~250개 수준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