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미·중 무역분쟁 틈바구니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 일본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증시가 미국과 함께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중국 증시와 동조화(커플링)된 한국은 장 초반 중국 눈치를 살피다 하락 반전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기업 실적과 경기 전망 등 내부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도 증시에 부담이다.
美 연일 최고가에도… 中 따라 주저앉는 코스피
◆가까워진 중국, 멀어지는 미국

코스피지수는 19일 7.82포인트(0.34%) 내린 2282.29에 마감했다. 장 초반 전날 미국 증시 상승세에 힘입어 0.3%가량 오르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 하락세로 전환했다.

전날인 18일도 마찬가지였다. 17일 나스닥지수가 0.63% 오르며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는 소식에 코스피지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중심으로 오전 한때 1%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으나 이후 갈수록 힘이 빠지더니 결국 0.34% 하락한 2290.11로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증시가 미국·일본 등 선진국 증시보다 중국 증시를 추종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중국 증시 간 동조화는 통계적 분석으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 간 상관계수(최근 3개월)는 18일 종가 기준 0.92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두 지수가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코스피지수와 미국 다우지수 간 상관계수는 -0.02, 나스닥과의 상관계수는 -0.67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지수와 상하이지수 간 상관계수는 지난 2월 초 -0.67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이후 조금씩 오르더니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된 지난달 중순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본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증시는 이와 달랐다. 18일 기준 6월 이후 주요국 증시 등락률을 보면 미국 나스닥지수가 5.5% 상승하는 동안 일본 닛케이225(2.6%), 프랑스 CAC40(0.9%) 등 선진국 증시가 뒤따라 회복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코스피지수는 이 기간 큰 폭으로 떨어진 상하이지수(-9.9%)를 따라서 5.4% 하락했다.

한국 증시가 중국과 동조화된 원인으로는 산업 구조상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면 중간재 위주로 대(對)중국 수출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이 꼽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수출은 1.6%포인트, 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오찬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오전에 오르다가도 오후 들어 중국 증시가 떨어지면 함께 하락 전환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펀더멘털 우려도 점점 커져

국내 증시와 중국 증시 간 동조화는 2012년에도 있었다. 당시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 주식시장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 경제 회복 기대와 기업 실적 개선이라는 훈풍을 타고 코스피지수가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선진국 증시와 동조화하고 중국과는 오히려 거리를 뒀다.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 가치도 최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무역분쟁 우려로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자 원화도 함께 절하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기업 실적 매력도 저하와 경기둔화 우려 등 내부 요인 또한 증시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증시 상승세를 이끌었던 상장사 실적은 올해 상대적으로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팩트셋 등이 집계한 2분기 코스피지수 구성 종목의 추정 영업이익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1%로 미국 다우지수(36.0%)와 나스닥지수(29.5%) 구성 종목에 크게 못 미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연간 예상 영업이익 증가율 역시 12.1%로 중국 상하이종합(38.1%), 영국 FTSE 100(23.5%), 프랑스 CAC40(20.3%) 등 편입 종목의 예상치보다 훨씬 낮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기 회복세가 약해짐과 동시에 수출 증가율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