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 우려로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23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시장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 우려로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23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시장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세계 주식시장이 23일 동반 급락하면서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통상전쟁’에 돌입한 여파로 한국 중국 일본의 주요 지수가 일제히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부터 증시 랠리를 이끌던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증시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아시아 증시 동반 급락

코스피지수는 이날 79.27포인트(3.18%) 하락한 2416.75에 마감했다. 2012년 5월18일(-62.78포인트, -3.40%) 후 5년10개월 만에 최대 하락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일인 2016년 11월9일(-2.25%),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된 2016년 6월24일(-3.09%)보다 하락폭이 컸다.

글로벌 증시 '검은 금요일'… 통상전쟁 공포에 한·중·일 3~4% 급락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1332억원, 643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낙폭을 키웠다. 유가증권시장 888개 종목 중 825개(92.90%)가 떨어졌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전날보다 24.45% 급등한 21.67로 마감했다.

미·중 간 통상전쟁이 현실화하자 간밤 미국 뉴욕증권시장에서 다우산업지수는 2.93% 급락했다. 이 영향으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3.39% 내렸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가치가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05엔 아래로 떨어지면서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4.51% 급락했다.

투자자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글로벌 통상전쟁과 증시 폭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투자심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간 대결 구도가 1930년대처럼 극한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1, 2위 무역 상대국인 두 나라 간 갈등이 커지면 한국이 중간에서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 중국에 반도체 등 중간재와 부품을 수출하는 한국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최악의 경우 글로벌 증시 조정이 올해 내내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통상전쟁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증시 변동성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전면전 가능성은 낮아”

극단적인 비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상전쟁 확산은 결국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에 피해를 불러올 것이란 분석에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협상 초기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극단적인 카드를 내놓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라며 “무역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달 초 1분기 실적을 내놓을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상장사 실적이 나아지는 추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1분기 상장사 실적 추정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고 2, 3분기 전망도 좋다”며 “코스피지수가 더 이상 크게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통상전쟁 여파로 조정폭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자동차, 가전, 철강 등 수출주와 위험자산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일부 제약·바이오주가 꼽힌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만큼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이 높은 종목의 급락에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최근 상승폭이 큰 종목들이 먼저 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최만수/홍윤정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