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메이저 자동차 회사 중 상당수가 각국 증시에서 시장평균(대표지수)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해당 국가의 증시를 대표하는 ‘간판’ 종목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통 자동차 기업들이 미래차 경쟁의 주도권을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빼앗기고 있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증시와의 속도 경쟁서 뒤처진 글로벌 자동차주
◆저속 주행하는 자동차주

2016년 판매대수 기준 세계 1~5위 자동차그룹 소속 주요 기업 중 작년 4분기 이후 주가 상승률이 각국 대표지수 상승률을 넘어선 곳은 독일 폭스바겐과 르노·닛산얼라이언스 산하 프랑스 르노 등 단 두 곳뿐이다. 폭스바겐은 작년 4분기 이후 지난 18일까지 30.40% 뛰어 같은 기간 독일 DAX지수 상승률(3.52%)을 크게 앞질렀다. 르노는 7.33% 올라 프랑스 CAC40(3.09%)보다 상승폭이 컸다.

일본 도요타(14.72%)와 닛산(2.70%), 미국 제너럴모터스(8.61%), 한국 현대자동차(2.99%)와 기아차(3.31%)는 모두 각국 대표지수의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기간 일본의 닛케이225는 16.73%, 미국 다우존스는 16.12%, 한국 코스피는 5.06%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상승률 1위 폭스바겐은 2015년 발생한 연비조작 사건에 따른 기저효과로 지난해 영업이익(201억달러)이 전년(78억달러)보다 2.5배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과 같은 상승 속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낮아지는 밸류에이션

상당수 자동차주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 궤적을 그리고 있다. 2016년 말 13.35배였던 폭스바겐의 실적 또는 실적 전망치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2017년 말 7.86배, 2018년(지난 18일 기준) 7.09배로 낮아지는 추세다. 작년 말 각각 9.82배와 10.02배였던 현대차, 기아차도 올 들어 7.82배와 6.15배로 하락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이 1배를 넘어서는 곳은 도요타(1.03배)가 유일하다. 폭스바겐(0.93배) 르노(0.76배) 현대차(0.62배) 기아차(0.49배)는 모두 1배 미만에 머물고 있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건 기업 가치가 자산을 다 팔고 사업을 청산할 때 가치보다 낮을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19일 한국 증시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4.52%, 4.13% 오르는 등 강하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 전환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모드 전환 가능할까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올해 실적 전망은 나쁘지 않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글로벌 빅5 자동차 그룹 계열사들은 올 한 해 영업이익이 평균 8.5% 증가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자동차주가 저속 주행하는 현상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경쟁에서 인텔 엔비디아 등 IT 기업에 밀려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은 전 세계 최고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가 자율주행차 솔루션을 제공하는 IT 기업의 하청업체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주 밸류에이션의 저평가 현상이 고착된 것을 놓고 일각에선 반등 가능성을 점치지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합당한 가격 수준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자율주행차용 카메라·센서 기업 이스라엘 모빌아이는 작년 말 기준 PER이 125.91배에 달했다. 미래차 분야의 혁신기업에 높은 밸류에이션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라는 분석이다. 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밸류본부장은 “주가를 볼 때 재무적 요인도 잘 살펴야 하지만, 해당 기업이 얼마나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도 중요하다”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