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66)이 다음달 3일 퇴임한다. 삼성증권 사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거치며 금융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다. 황 회장은 ‘검투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금융투자업계의 이익을 공격적으로 대변해 회원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연임이 확실해 보였지만 자신은 “문재인 정부와 결이 다르다”며 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스스로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상 기피인물)’라고 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정부 정책은 금융회사의 야성과 상상력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fotoleesj@hankyung.com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정부 정책은 금융회사의 야성과 상상력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fotoleesj@hankyung.com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빌딩 집무실에서 만난 황 회장은 ‘정부의 퇴진 압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현 정부가)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원활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한국 금융산업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수준이며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가 화근”이라며 정부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금융산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어떻게 한 산업이 20년 동안 꼼짝도 못하고 답보할 수 있는지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이렇다 할 ‘레거시(유산)’를 남기지 못했어요. 3년 전 금투협회장에 출마한 이유도 이대로는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금융인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겠다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 금융산업이 정체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정부 탓이 크다고 봅니다. 정부가 금융산업을 키우기는커녕 규제와 관리만 해왔죠. 외환위기 이후 규제는 강경 일변도였습니다. 정부는 ‘금융회사는 사고만 치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요. 넘어지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배울 수 없습니다. 제조업은 망하더라도 해외에 진출하게 하고 치열한 경쟁도 붙였지만 금융산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금융규제가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한국 금융산업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등장인물인 레드(모건 프리먼) 같은 신세라고 보면 됩니다. 장기복역 후 출소한 뒤 마트에 취직한 레드는 죄수 시절의 감시와 통제에 길들여져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상사에게 허락을 맡으려고 하죠. 국내 금융회사들도 오랫동안 규제에 길들여졌어요. 새로운 뭔가를 할 때마다 금융감독당국에 물어봅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회사들조차 당국의 사전 승인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죠. 이런 풍토 속에 어떻게 ‘금융의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없다면 앞으로 또 20년이 흘러도 금융산업의 선진화는 불가능합니다.”

▷금융회사에 자율성을 더 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바람은 다 같습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를 믿고 자율성을 줍니다. 아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만 개입하죠. 반면 분 단위로 학원 스케줄을 잡고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달달 볶는 부모도 있어요. 지금 한국의 금융산업 규제는 후자와 같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전에 없고, 남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가 금기사항처럼 여겨지는 이유죠.”

▷정부도 그동안 나름대로 규제 완화에 힘쓰지 않았나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막강한 거북선이라도 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전투를 할 수 없겠죠. 책임 지기 싫어하는 공무원들은 늘 이런 구멍을 만들어 놓습니다. 법과 규정의 미세한 해석상의 차이를 이용해 사업을 무산시키는 사례가 ‘중국발 미세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요. 금융 관료를 확 줄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의 3분의 1만 남겨보자는 거죠. 1년 뒤에 금융업계가 잡초만 무성한 불모지로 변할까요. 저는 오히려 금융산업이 잘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은행권을 지속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은행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돌파하기에는 조직이 너무 비대합니다. 증권사는 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규제를 받고 있죠. 은행업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론(論)을 꾸준히 제기한 까닭입니다. 은행권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인지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자산운용업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자산운용업은 투자자와 운용사가 1 대 1로 계약을 맺는 구조여서 정부가 끼어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자산운용업 성장 가능성이 큰가요.

“국민연금을 비롯해 연금시장 규모가 1000조원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인프라도 갖췄죠. 한국형 헤지펀드(사모펀드)가 등장하면서 취임 초 86개였던 운용회사 수가 215개로 늘었어요. 운용업계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겁니다. 앞으로 5~10년간 치열한 경쟁을 거친 뒤 대형화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자산운용업 중심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봐요.”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그렇게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놀랍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어요. 일본은 공적연금(GPIF)법에 ‘연금적립금의 운용이 시장 및 기타 민간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유의하라’고 적시하고 있죠. 국민의 노후자금 마련에만 집중하라는 얘기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GPIF가 보유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모두 자산운용사에 위탁하죠. 우리도 일본 모델로 가야 합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겁니까.

“한국의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할 때 운용사에 일임하거나 위탁하는 방식을 택하죠. 위탁하면 운용사가 의결권을 보유하지만 일임 투자분은 국민연금이 갖습니다. 국민연금이 투자할 때는 모두 위탁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연임 문제도 이슈입니다.

“두 차례 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경험에 비춰보면 금융지주 수장의 임기는 ‘3년+3년’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원들은 조직을 떠나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인사에 목을 매죠. 장기 집권자가 나오면 인사권이 더 강해져 ‘황제경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장 재임 기간에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야성과 상상력이라는 금융투자업의 본질을 환기시켰다는 점입니다.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도입하고 초대형 투자은행(IB)의 첫발을 뗐죠. 그동안 맡은 일 가운데 금투협회장이 가장 보람 있었어요. 퇴임한 뒤에는 금융권에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로펌 등) 다른 조직에 이름만 걸어놓고 돈을 받는 일도 없을 겁니다. 여유가 된다면 후학을 기르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월요인터뷰] 황영기 "금융산업, 화장실 갈 때도 허락 필요한 죄수 신세… 20년 뒤도 뻔해"
● 황영기 회장은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에게는 ‘검투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2001~2004년 삼성증권 사장 시절 “회사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영화 ‘글래디에이터’ 속 검투사의 자세로 일하겠다”고 말한 게 인연이 됐다. 당시 삼성증권은 ‘천수답식 영업’으로 불리던 주식위탁매매에서 자산관리 중심으로 영업 기반을 바꿨다.

삼성증권 사장에서 물러나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을 맡을 때는 안에 단검이 들어 있는 지휘봉을 일선 지점장들에게 나눠주며 영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런 일화와 함께 옳다고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 황 회장의 강단 있는 성격이 검투사라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황 회장은 1975년 삼성물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뱅커스트러스트은행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1989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이 됐다. 1999년에는 삼성투자신탁운용(현 삼성자산운용) 사장으로 선임돼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등 비은행 사업부문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지만 금융위원회가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로 은행에 1조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려 1 년여 만에 하차하기도 했다. 그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정소송을 벌여 징계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2015년 금투협회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 마련, 한국형 헤지펀드(사모펀드) 신설, 한국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비과세 해외 주식형펀드 도입 등을 이끌었다.

△1952년 경북 영덕 △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석사 △삼성물산 △뱅커스트러스트은행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KB금융지주 회장 △제3대 금융투자협회장 △다산금융상 대상·공로상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