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가정책 내세운 질레트 승승장구하는 이유
타이어 제조업체 미쉐린은 이전보다 사용 가능 기간이 25% 개선된 새 트럭 타이어를 출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지된 타이어 가격이 소비자에게 익숙해진 터라 가격을 대폭 올렸다가는 소비자의 저항에 부딪칠 게 뻔했다. 이에 미쉐린은 타이어의 사용량에 따라 돈을 내는 정책을 도입했다. 소비자는 신형 타이어를 25% 더 긴 기간 사용하게 돼 자연스레 25%를 더 부담하게 됐다. 이 상품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다른 타이어 제조업체도 비슷한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했다.

가격결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헤르만 지몬 독일 빌레펠트대 교수는 《프라이싱》에서 가격이 지닌 힘과 중요성,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 알려준다. 기업이 창출하는 모든 수익은 가격 결정이 낳은 직·간접적 결과물이다. 할인 묶음판매 정액제 조조할인 등 다양한 가격 결정은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한다. 저자는 기업이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가격을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기업은 낮은 가격 또는 높은 가격을 이용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독일의 대형 할인점 알디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통한 초저가 전략으로 고성장을 이루고 있다. 패션 소매기업 H&M과 자라는 재고가 남지 않도록 물류 배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저가 전략을 펼치면서도 큰 수익을 낸다.

질레트는 프리미엄 가격결정 기술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초의 3중 면도날을 사용한 ‘마하3’는 기존의 자사 최고가 제품보다 41% 높은 가격에 출시됐다. 질레트는 ‘마하3터보’ ‘마하3파워’ ‘퓨전’ 등 혁신적인 새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계속해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했다. 질레트는 세계시장을 70% 가까이 점유하고 50년 역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애플은 ‘스키밍’ 전략으로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스키밍이란 시장에 신제품을 선보일 때 고가로 출시한 뒤 점차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다. 아이폰은 초기 출시가격이 매우 높게 책정되면서 시장에 높은 기술과 품질은 물론 품격까지 갖추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흡수한 뒤 수개월 후 가격을 내려 폭발적인 판매 증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입장권의 가장 낮은 기본가격은 20.12파운드, 가장 비싼 가격은 2012파운드였다. 2012란 숫자는 가격표에서 몇 번이고 등장하며 모든 사람은 즉시 이 금액이 올림픽게임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가격이 수익 창출 수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강력한 홍보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