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앞다퉈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내놓으면서 스팩 시장이 ‘다산(多産)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증시 입성을 노리는 스팩은 ‘공모주 청약 미달’로 몸살을 앓고 있고, 2015년에 설립된 스팩은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된 스팩(11개)과 상장 대기 중인 스팩(3개)을 합치면 지난해 연간 상장한 스팩 수(12개)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올해 코스닥시장에 이름을 올린 스팩 11개 중 7개에서 실권주가 발생했다.

지난달 말 상장된 하나금융9호스팩을 주관한 하나금융투자와 교보7호스팩의 교보증권은 각각 60만 주가 넘는 실권주를 떠안아야 했다. 실권주 인수에 드는 비용(12억~13억원)이 상장 주관 수수료의 3~4배에 달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공모주 시장에서 스팩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로 다산 후유증을 꼽는다. 스팩이 늘어나면서 ‘합병 대상 찾기’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스팩들이 피합병 대상 기업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해 합병할 때 스팩 주주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

신규 스팩 상장이 이어지면서 합병 기한이 임박한 기존 스팩에는 비상이 걸렸다. 스팩은 설립 후 3년 안에 합병하지 못하면 해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5년에 상장된 스팩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45개 스팩 중 21개가 아직 ‘짝지을 대상’을 찾지 못해서다. 이들 스팩이 조만간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KTB스팩1호(2014년 11월 상장), 하나머스트3호스팩(2014년 12월 상장)처럼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대우스팩2호(2014년 10월 상장)와 현대에이블스팩1호(같은해 11월 상장)는 이미 상장 폐지됐다.

IB업계 관계자는 “2015년 5월 상장된 대우스팩3호가 최근 바이오기업 메디오젠과 합병하는 등 지난달에만 9개 스팩이 합병 대상을 찾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스팩이 워낙 많아 합병 대상 기업을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2015년 상장 스팩 중 상당수는 ‘짝짓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팩전문 자문사인 ACPC의 남강욱 부사장은 “시간에 쫓겨 합병 대상을 찾다 보면 피합병 기업의 가치를 실제보다 후하게 쳐줄 가능성이 있다”며 “피합병 법인의 주가수익비율(PER)을 업종 평균과 비교해보는 등 합병 후 주가 상승 여력이 있는지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