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철벽 수비수' 연기금…'공격수' 변신, 강세장 이끌어
외국인 투자자에 이어 국내 연기금이 강세장에 뛰어들었다. 연기금은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하루 순매수 규모로는 약 6년 만에 최대 규모인 3397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연기금의 공격적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문가들은 주로 급락장에서 지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비수’ 연기금이 상승장에서 ‘공격수’로 나선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업 실적 호조에 힘입어 코스피지수가 가파르게 치솟자 ‘풀베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피 상승세에 ‘항복’

'증시 철벽 수비수' 연기금…'공격수' 변신, 강세장 이끌어
이날 코스피지수는 7.71포인트(0.33%) 오른 2311.74에 마감했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 사상 처음 2300선을 돌파한 뒤 이틀 연속 신기록을 썼다. 장중 한때 2326.57까지 치솟아 지난 10일 기록한 장중 역대 최고치(2323.22)도 9거래일 만에 갈아치웠다.

상승장의 주역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었다. 외국인과 개인이 각각 550억원, 2620억원어치를 순매도했지만 연기금의 매수세(3397억원)가 더 강했다. 이날 연기금의 매수 규모는 2011년 8월19일(5057억원) 후 5년9개월 만에 최대였다.

전문가들은 2300이라는 부담스러운 지수에도 불구하고 연기금이 ‘사자’에 나선 것에 주목하고 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팀장은 “과거 사례를 보면 주로 지수가 하락할 때 집중 매수한 뒤 상승장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게 연기금의 일반적인 매매패턴이었다”며 “연기금의 대규모 순매수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연기금은 2008년(9조5365억원), 2011년(12조8045억원) 등 코스피지수가 급락할 때 대규모 매수에 나섰다. 작년에도 코스피지수가 2000선 밑으로 떨어졌던 11월23일(3216억원), 12월6일(2825억원)에 집중적으로 돈을 풀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조정장에서 들어갈 기회를 엿보던 연기금이 지수가 계속 오르자 참지 못하고 매수세에 동참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강세장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후유증이 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기금, ETF도 집중 매입

연기금은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35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대형주 편식’ 성향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기관 자금의 유입으로 내수주와 중소형주로의 순환매를 기대하고 있지만, 올해 연기금은 정보기술(IT)과 실적 개선세가 뚜렷한 철강·정유·화학 등 수출 대형주 위주로 사들였다.

연기금의 올해 투자전략은 적중했다. 연기금의 ‘매수 1위’인 SK하이닉스(2063억원)는 올 들어 23.3% 올랐다. 연기금이 1370억원어치를 사들인 삼성전기 주가는 59.5% 뛰었다. 대한항공(21.9%) LG화학(10.9%) 포스코(10.7%) 등도 높은 수익률을 냈다. 올해 ‘실적 장세’가 본격화된 만큼 앞으로도 대형 수출주 위주로 연기금 매수세가 몰릴 것이란 전망이다.

연기금은 이달 들어 KODEX200(1942억원), KODEX 레버리지(598억원) 등 코스피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수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올 들어 지속된 외국인 위주의 수급 여건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자산은 2015년 512조원에서 올해 558조원으로 46조원 늘었다. 올 들어 연기금 전체 누적 순매수 규모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쳐 1조1494억원에 그치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 목표는 20%가량”이라며 “국내에서만 10조원 규모의 주식을 추가로 사들일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윤정현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