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국내 운용업계에서 ‘가치 투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의 투자 철학이 담긴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는 저평가된 우량주를 발굴해 끈기 있게 기다린 뒤 차익을 내는 방식으로 2006년 출시 이후 150% 이상 수익을 냈다. 펀드 순자산이 한때 1조6000억원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그의 가치투자가 시련을 겪고 있다. 2014~2016년 연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에 그친 데다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4년 만에 ‘1조원 펀드’ 자리도 내줬다.
가치투자 대명사 '이채원 펀드'의 시련
◆수익률 부진에 뭉칫돈 유출

18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 순자산은 952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7일 1조원 벽이 무너졌다. 펀드 순자산이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건 2013년 7월11일(9772억원) 후 3년9개월 만이다. 2015년 5월6일 1조6406억원까지 불어났던 펀드 순자산은 지난해 3830억원이 빠져나간 데 이어 올해 유출액도 1529억원에 달한다.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대준 1000억원으로 2006년 출범한 이 펀드는 출시 1년 만에 운용규모 1조원을 돌파했다. 3년 이내 환매하면 별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투자금이 밀려들었다. 0.97%의 수익률에 머문 2011년 ‘차화정(자동차주·화학주·정유주)’ 장세에서 주춤하긴 했지만 2012년(20.79%)과 2013년(19.39%) 반등에 성공, ‘1조원 펀드’ 자리를 꾸준히 지켰다.

최근 뭉칫돈이 빠져나가는 이유는 3년간 이어진 수익률 부진 탓이다. 이 펀드는 2014년과 2015년 0%대 수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엔 -4.7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장기 투자 중인 3차원(3D) 영상 측정 장비 업체 고영과 동아타이어에선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지만 한국전력과 NICE, 코리안리, 현대모비스 등에선 손실을 보고 있다. 2014~2015년 수익률 고점에 가입한 투자자를 중심으로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력 이탈로 투자 경쟁력 약화

‘이채원 펀드’의 부진은 30~40대 펀드매니저의 잇단 이탈에서 시작됐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독특하게 신입 공채로 펀드매니저를 채용한다. “백지 상태에서 회사의 가치투자 전략을 배워야 한다”는 이 부사장의 지론 때문이다. 이렇게 키운 공채 출신 펀드매니저 10명 이상이 대거 이직했다. 연공 서열 중심의 성과 배분 등으로 불만이 누적됐다는 후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상향식(보텀업) 종목 발굴과 리서치 역량이 한국밸류의 강점”이라며 “이를 주도해야 할 ‘허리층’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을 따로 뽑지 않다 보니 회사에는 어린 연차와 고참 펀드매니저만 남았다”는 설명이다.

싼 종목을 장기 보유해 수익을 남기는 투자 시스템에도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10월 23%까지 지분을 늘렸던 코스닥 상장사 비에이치 사례가 대표적이다. 2대 주주였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이 회사 지분을 지난해 4000~5000원대에서 전량 매도했다. 이후 주가는 네 배 (18일 종가 2만1900원)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전자를 160만원대에서 전량 매각한 것도 아쉬운 투자 사례로 꼽힌다. 한 펀드매니저는 “종목 발굴이나 매도 시점 등에 대한 직원들의 적절한 서포트(지원)가 있어야 하지만 현 인력 구조에선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