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으로도 사모펀드 가입할 수 있는 시대…전문투자자로 변신하는 부자들
전문투자자 등록을 검토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투자형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다. 개인 자격으로 사모펀드에 투자하려면 최소 1억~5억원이 필요하지만 전문투자자 자격을 얻으면 1000만~2000만원만 있어도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투자자 후보군만 18만명

전문투자자 기준이 완화된 것은 새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효력이 발생한 지난달 30일부터다. 기존에는 금융투자상품에 5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어야만 전문투자자 간판을 얻을 수 있었다. 문턱이 높다 보니 전문투자자 자격을 갖고 있는 개인은 130명에 불과했다. 전문투자자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배경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투자상품 잔액이 5억원 이상이면서 연소득이 1억원 이상이거나 총자산이 10억원이 넘으면 누구나 전문투자자로 등록할 수 있다. 이동원 금융투자협회 증권지원부 부장은 “사모펀드를 활용하는 부자들도 수억원의 현금을 한꺼번에 마련하긴 힘들다”며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해 투자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잦았던 젊은 자산가들이 전문투자자 등록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사들도 전문투자자 규제 완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사모펀드 투자를 권하기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심형보 유안타증권 금융센터송파본부점 PB는 “사모펀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펀드당 수천만원씩만 넣겠다는 투자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3년 안에 개인 전문투자자들이 1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KB금융지주연구소의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사람은 18만2000명에 이른다. 연 소득이 1억원이 넘는 사람도 22만6609명에 달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전문투자자 등록을 서두르는 것은 재테크 시장이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서다. 지난달 말 기준 사모펀드의 순자산 총액은 228조9164억원. 처음으로 공모펀드(224조5278억원)의 순자산을 앞질렀다.

사모펀드의 투자규모는 상품당 100억~500억원 선으로 공모펀드의 10분의 1 안팎이다. 덩치가 작은 만큼 시장 분위기가 바뀔 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었던 지난달에도 대부분 사모펀드들이 ‘플러스’ 수익률을 냈다.

사모펀드는 사전에 정해진 수수료만 받는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가 올린 수익 가운데 10% 안팎의 금액을 성과보수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들이 사모시장에 몰려 있다.

크라우드펀딩 등 투자에도 유리

현행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49명까지만 유치할 수 있다. 수백만원을 넣는 일반 투자자를 받으면 펀드 규모가 쪼그라들어 제대로 된 투자할동을 하기 힘든 만큼 최소 투자금액을 높게 잡을 수밖에 없다. 전문투자자에게도 이 같은 ‘49인 규제’는 그대로 적용된다.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펀드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전문투자자들을 배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처음부터 전문투자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상품이 전체 사모펀드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나 코넥스시장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도 전문투자자 등록을 고려해볼 만하다. 전문투자자가 되면 같은 기업에 200만원, 연간 500만원인 크라우드펀딩 투자한도 제한에서 자유로워진다. 기본 예탁금 1억원을 내지 않아도 코넥스 상장기업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전문투자자로 등록하려면 금융투자협회에 금융투자상품 잔액과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내야 한다. 거래 증권사에 등록을 위탁할 수도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