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27일 오전 10시57분

기업이 신속하게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일괄신고제도’를 활용하더라도 반드시 수요예측(기관투자가 사전 청약)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사전에 원하는 금리 수준을 정해 놓고 해당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도록 주관사(증권사)를 압박하는 불건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일괄신고제도를 주로 활용해온 은행과 카드 캐피털 등 여신전문회사, 한국전력 발전자회사가 모두 수요예측을 거쳐 채권을 발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증권인수 업무규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과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일괄신고제도는 기업이 빠르고 편리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91년 도입했다. 금융당국에 일정 기간의 발행 계획만 미리 신고하면 돼 회사채 발행이 잦은 은행, 카드사 등 금융회사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투명한 발행 절차를 따르지 않아 시장금리를 왜곡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갑(甲)의 입장인 발행사가 시장 수요와 관계없이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하는 증권사를 주관사로 선정하거나, 미리 금리를 정해 놓고 그대로 발행하라고 압박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증권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발행사에서 받은 수수료를 발행금리에 얹어 인수가보다 더 싼 가격에 회사채를 기관투자가에 넘기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증권사로선 팔리지 않는 회사채를 떠안기보다 수수료를 포기하더라도 바로 처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IB업계에서 ‘수수료 녹이기’로 불리는 이 같은 관행은 2012년 공모회사채 발행 시 수요예측을 의무화(일괄신고제도 예외)하는 주요 배경이 됐다.

금융감독원은 일괄신고제도 아래 벌어지는 불건전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4월 금융회사에 ‘문제가 계속되면 수요예측을 시행하도록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문을 보낸 뒤 시장 상황을 주시해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경고 이후 수수료 녹이기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의심할 만한 사례가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시행을 의무화하면 발행이 잦은 금융회사는 다소 불편을 겪을 전망이다. 은행과 여신전문 업체들은 신속한 조달이라는 일괄신고제의 장점이 훼손된다는 입장이다.

■ 회사채 일괄신고제

은행, 여신전문업체,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등 회사채를 자주 발행하는 기업이 특정 기간 발행 예정 규모를 금융위원회에 미리 신고하는 제도. 회사채 수요예측을 하지 않아도 되고 증권신고서 작성과 실사도 약식으로 할 수 있다.

서기열/이태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