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등 사태 계기 비판 여론 고조…금융委 법안 재추진

정부가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 대표의 자격박탈이라는 초강경 제재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최근의 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부실한 회계감사가 국가경제적으로 야기하는 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12일 회계법인 대표에게 부실감사의 책임을 묻는 제재 방안을 담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차질 없이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앞으로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올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지난 10일 규개위에서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즉시 언론에 자료를 배포하는 등 이를 알리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금융위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회계법인 대표 제재안은 지난 3월 규개위에서 과잉규제라는 이유로 철회 권고를 받아 사실상 폐기될 운명에 놓였었다.

그러나 해운·조선업종의 주요 기업들이 대규모로 누적된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엄청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회계법인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금융위는 이런 기류를 반영해 2개월 만에 다시 법안을 다듬어 재상정했고, 규개위도 여론을 의식해 신속한 심의를 벌여 통과시켰다.

3월 규개위에서 법안 철회 권고가 나왔을 때도 '회계법인 봐주기'라는 비판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회계법인이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된 데는 수조원대 부실을 숨긴 채 투자자들과 채권단을 속여온 대우조선해양의 '회계절벽' 사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회사 감사를 맡아온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수년간 '적정' 의견만 외치다가 뒤늦게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올 3월 대우조선의 작년도 영업손실 5조5천억원 중 2조원을 2013~2014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했다고 정정하는 뒷북을 쳤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지난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 머지않아 책임 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안진뿐만 아니라 현대상선, 한진해운, STX조선해양 등 구조조정을 겪는 기업들의 외부감사를 맡은 다른 회계법인들도 부실의 심각성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적정 의견만 남발했다.

부실화에 대한 사전 경고음을 전혀 울리지 못해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울리고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하게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런 대형 회계법인들이 다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찾기 위한 실사를 벌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STX조선의 구조조정 실사를 하는 EY 한영회계법인은 2011년 상장 2개월 만에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난 중국기업 '고섬'의 회계 감사를 맡았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고섬은 분식회계로 결국 상장폐지됐고, 한영의 감사 보고서를 믿고 고섬에 투자한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기업의 감사나 실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뒷받침되는 대형 회계법인이 할 수밖에 없어 이른바 '빅4'가 돌아가면서 일을 맡는 게 우리 회계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실감사가 되풀이 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론 저가수주 경쟁이 꼽힌다.

저가에 일감을 받아오니 필연적으로 적정한 감사인력이나 시간을 투입할 수가 없어 저질 감사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골라 감사를 맡는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구조에선 회계법인이 기업 눈치를 보는 감사를 할 수밖에 없어 내실있는 감사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게 사실이다.

금융위가 이번에 새로 마련한 외감법 개정안은 이런 문제를 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강력한 제재로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회계법인 대표가 감사품질 관리에 더욱 신경 쓰도록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사품질은 회계법인이 어느 정도의 인력을 투입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대표인 만큼 기업 감사에 적정 인력을 넣고 양질의 감사가 이뤄지도록 관리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 외감법 개정안은 회계법인의 적정한 감사시스템을 강제하는 '품질관리기준'도 마련했다.

이 규정도 회계법인이 감사에 적정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도록 해 부실감사를 막기 위한 조치다.

지금까지 감사 관련 품질관리 기준은 법에 정해져 있지 않고 시행령 등에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올라 있어 금융당국이 기준을 준수하라고 개선을 권고해도 회계법인이 듣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앞으로 금융당국은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관리 수준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미흡한 사항에 대한 개선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할 예정이다.

외부감사인 선임 권한을 회사 경영진이 아닌 감사나 감사위원회로 이관하는 내용도 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는 감사 대상 회사 경영진과 회계법인 측 간의 유착을 근절하기 위한 것이다.

실사나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피감 대상 기업 간의 유착은 한진해운 실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회장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관련 정보를 뀌띔해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의 감사나 감사위원회도 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감사는 주주의 대표로서 이사를 김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며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외감법상 분식회계 행위에 대해 분식 금액의 10%, 2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규정도 원래 3월 규개위 심사에서 철회 권고를 받았으나 이번에 통과됐다.

현행법으론 자본시장법에 따라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법인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앞으론 외부감사 대상 법인이면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는 기업에도 과징금을 물릴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분식회계 위반행위별로 산정되는 과징금 중 가장 큰 금액 1건만 부과하던 것을 위반행위별 과징금을 모두 합산해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자본시장조사업무규정'이 8월부터 시행된다.

이렇게 되면 분식회계 행위별 과징금 한도가 20억원이지만 합산 부과가 가능해져 20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물릴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주산업의 반복되는 회계부실을 막기 위해 회계법인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회계감리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제고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 회계 투명성이 곤두박질치고 대규모 기업 부실과 혈세 투입이 반복되는 동안 금융당국은 제대로 역할을 했느냐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