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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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의 대규모 통화 완화정책에도 시장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추가 금리인하는 없다'는 발언이 '실수'인지 몇 수 앞을 내다본 '묘수'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져서다.

11일 오전 11시 현재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02포인트(0.20%) 오른 1973.35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ECB의 파격적인 통화 완화정책에도 보합권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ECB는 전날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인 '레피(Refi)' 금리를 '0.0%'로 5bp(1bp=0.01%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하루 동안 돈을 맡길 때 적용되는 예금금리를 기존 마이너스(-) 0.30%에서 -0.40%로 0.10%포인트 내렸다. 월간 자산매입 금액도 현행보다 200억 유로 확대한 800억 유로로 결정했다.

매입 대상 자산도 기존 국채와 커버드본드, 자산유동화증권(ABS), 유럽 기관채에 더해 투자등급의 비은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도 추가하기로 했다. 또 실물경제에 대한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4년 만기의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오는 6월부터 2차로 가동하기로 했다.
[초점]드라기 발언 '실수'인가 '묘수'인가…ECB 정책 효과 잠재운 '입'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드라기 총재의 '입'에 있었다. 드라기 총재는 정례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ECB의 대규모 정책 발표 직후 주식·채권시장은 강세를 보이고 유로화는 약세를 보였지만,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향후 추가 금리인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 탓에 추가적인 정책 기대감이 소멸, 금융시장이 혼란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드라기 총재의 발언 이후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다시 강세로, 유로존 내 주식·채권시장은 약세 흐름으로 돌아섰다.

드라기 총재의 발언에 대해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ECB 이벤트의 핵심은 드라기 총재의 발언을 해석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금리인하 대신 비전통적인 방식(양적완화)이나 재정정책 지원 등 다른 방법들 쓰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회사채 시장의 과열 양상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며 "ECB가 매입을 시작하면 유동성은 다시 위험자산인 회사채로 쏠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CB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격적인 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도이치뱅크의 코코본드 이자 지급 불이행 이슈였다"며 "추가 금리인하를 선택할 경우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은행권이나 가계 대출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대로 (이번 정책회의에서) 금리인하를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미 달러화 대비 유로화의 강세를 제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연구원은 "ECB의 깜짝 정책 추진이나 일본의 예상치 못했던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등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정책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물가 상승 기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대출 증대 및 실물경제 회복으로 연결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ECB 이벤트가 끝나면서 공은 다음 주 일본 중앙은행(BOJ)와 미국 중앙은행(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로 넘어갔다. 유로화 환율 변수 역시 오는 17일 미국 Fed의 결과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드라기 총재 연설의 혼돈은 있지만 이번 정책이 시장의 기대를 넘는 강한 통화완화정책이라는 점에서 향후 유로화 환율은 약세 압력이 커질 것"이라며 "다만 미국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가 지연될 경우 유로화는 다시 강세 압력이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하 한경닷컴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