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하락인가,단기 급등에 따른 일시 조정인가. 원 · 달러 환율이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대세 하락기로 접어들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거래일간 환율 하락폭은 97원이나 되고 11일 종가 1471원은 지난달 18일의 1468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단기 고점은 확인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원 · 달러 환율이 '단기 고점'은 찍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주 환율이 장중 159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결국 1600원을 넘지 못하고 하락세로 돌아서자 6일 장중 기록했던 1597원을 단기 고점으로 보는 것이다.

우선 1600원이 외환당국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 3일 환율은 장 초반 1594원까지 오르면서 1600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급락,결국 종가는 전날보다 17원90전 떨어졌다. 그 뒤로도 환율이 1600원 근처만 가면 번번이 당국의 개입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나타나곤 했다.

당국이 1600원은 안 내주려 한다는 인식이 생기자 1500원대 후반에서는 당국의 개입 없어도 수출업체들의 달러 매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를 비롯해 그동안 달러를 사들였던 역외세력도 지난주 후반부터는 환차익을 얻기 위해 달러를 팔고 있다.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상승을 억제하는 사이 나라 밖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11일에는 씨티그룹이 지난 1~2월 순익을 냈다는 소식을 비롯 미국발 호재가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로 이어지면서 환율 하락세에 속도가 붙었다.

김성순 기업은행 차장은 "1400원대에서는 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추가 상승 쪽에 거는 경향이었는데 1500원대에서는 시장의 흐름이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고 있다"며 "단기 고점은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거래량 적어 변동성 확대

그러나 환율의 추세 반전을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하락세는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흐름을 분석해 보면 1380원까지도 내려갈 수 있지만 그 수준까지는 단기 급등 이후 나타나는 조정으로 봐야 한다"며 "1300원대 중반까지 추가로 하락하면 본격적인 하향 안정세에 접어든 것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금융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상 한동안 대외 악재가 터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환율의 대세 하락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환율이 급등세를 보인 것도 동유럽발 금융위기를 비롯한 대외 악재의 영향이 컸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고 수출 부진으로 달러 유입이 줄어들고 있어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원화가치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가 줄어든 상황이라 환율이 더 급격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 10일 원 · 달러 환율의 장중 변동폭이 61원에 달했던 것을 비롯해 최근 환율은 하루 40~50원의 급등락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환율 급등락은 환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에 부담이 된다. 지난해 평균 80억달러 수준이었던 하루 거래량은 최근에는 40억~50억달러로 줄었다.

때문에 '달러가 없다'는 말로 요약되는 외환시장의 매물 공백 현상이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역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내는 가운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 다시 늘어나고 은행의 외화 차입도 지금보다 원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