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구조를 재편할 최대 '빅딜'로 꼽혔던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끝내 무산됐다. 산업은행은 한화와의 인수 조건을 둘러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을 선언,지난해 8월 매각공고 이후 5개월여를 끌어온 대우조선 매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우조선의 재입찰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6조원 규모의 '빅딜' 무산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이닉스 현대건설 등 초대형 매물이 줄줄이 대기 중인 국내 기업 인수 · 합병(M&A)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왜 결렬됐나


자금 조달을 자신하던 한화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유로 분할 납부 등을 요구하면서 산은과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산은은 지난해 말 예정이던 본계약 시한을 이달 30일로 한 차례 연기해 주면서 협상 결렬 위기를 벗어나는 듯했지만,거기까지가 산은이 수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의 전부였다.

산은이 이후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한화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로 했지만,한화는 분할 납부 등 결제조건 변경 요구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산은이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부 의사를 거듭 밝힘에 따라 협상 결렬이 불가피했다.

한화는 금융위기로 인한 특수 상황을 배제하고 MOU 조항 준수 등 원칙만을 내세운 산은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공기업 조직인 산은이 한화의 요구를 수용할 명분이 없는 데다 향후 특혜 시비 등 잡음이 일까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재입찰 난항 예고

산은은 21일 대우조선해양의 향후 처리 방안과 관련,일정 기간 후 매각을 재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기간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산은 관계자는 "금융 상황이 좋지 않고 조선업 시황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데다 적극적인 인수 희망 업체도 없는 상태여서 매각 일정을 전망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포스코 등 유력한 인수 후보 업체들마저 "더 이상 흥미가 없다"며 재입찰이 이뤄지더라도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산은이 가격을 낮춰 서둘러 원매자를 찾으려 할 경우 헐값 매각 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관계자는 "대우조선뿐 아니라 다른 금융 공기업도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우조선은 재매각 때까지 기업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경영 효율화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은은 대우조선 재매각 계획을 22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한화,"기존 사업 중심으로 내실에 주력"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인생 최대의 승부수'로 꼽았던 대우조선 인수에 실패하면서 유 · 무형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조선업 진출이라는 비전이 사라지면서 향후 그룹을 성장시킬 추동력을 새로 찾아야 한다. 대한생명,한화석유화학(옛 다우케미칼),한화 갤러리아(옛 한양유통 · 동양백화점) 등으로 그룹 성장을 견인했던 한화의 M&A 불패 신화도 막을 내렸다.

또 금융위기 등 돌발변수가 출현했다 하더라도 정밀한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의욕만 앞세웠다는 대내외 평가와 함께 기업 이미지도 타격을 받게 됐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 실패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현금 흐름 개선에 초점을 맞춰 전 계열사가 경비를 감축하는 등 비상경영 체체에 돌입했다. 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M&A보다는 석유화학과 금융 등 기존 주력 사업 중심으로 내실을 다져 나간다는 게 그룹의 경영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심기/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