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법정관리 기업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회사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는 뒷전이고 일단 엄청난 가격을 써내고 보자는 업체들이 많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최근 몇 차례 법정관리 기업 입찰에서 떨어진 모 구조조정회사 K 사장의 말이다. K 사장은 법정관리 기업 매각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대부분 '고가 입찰 방식'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매각 가격 못지않게 기업회생 능력에 대한 평가와 응찰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 껍데기가 된 입찰서 쌍방울개발과 상아제약의 사례는 법정관리기업 매각을 위한 입찰조건이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이들 두 회사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때와 최종계약 당시의 회사 주요주주가 서로 달랐다. 그나마 회사를 장기적 안목으로 운영할 전략적 투자자가 최종 인수하기는 했지만 현행 제도로는 법정관리 기업이 자칫 새 주인을 잘못 만나 재부실의 늪에 빠질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예컨대 쌍방울 인수자로 결정된 애드에셋컨소시엄에 참여하려던 다임구조조정은 최초 입찰에서 회사의 지급능력 잣대로 평가되는 잔고증명을 제출하고도 주식을 한 주도 받지 못했다. 애드에셋측이 쌍방울에 투자자가 몰리자 회원사에 조차 액면가가 아닌 프리미엄을 붙여 주식인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기업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에 일관성과 형평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과 채권단은 쌍방울개발을 인수한 볼스브릿지컨소시엄은 매각대금 납입일을 두차례 연장해 주면서까지 투자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준 반면 (주)한보를 인수하려던 평화제철에 대해서는 계약금 지급이 지연되자 아예 우선협상자 선정을 취소한 것이 단적인 예다. ◆ 고가 매각의 득과 실 회사를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회사의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는 점에서나 채권단의 채권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고가 매각이 회사의 회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회사에 유입되는 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회사매각 대금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인수자가 현찰로 내는 자본금 납입분과 부채인수분(또는 회사채 발행), 현찰 등이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대부분 채권단에 넘어간다. 결국 인수금액은 채권단의 채권회수율과 관계가 있지 회사와는 사실상 무관해진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수금액이 클 경우 오히려 자본금과 부채가 동시에 늘어난다. 자본금 규모가 클 경우 향후 회사의 경영을 위해 증자가 필요해도 자본금 규모의 부담때문에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기업 회생을 목적으로 하는 법정관리 기업의 매각이 '가격'에만 지나치게 치우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 정체모를 컨소시엄 대부분의 컨소시엄들이 기업구조조정회사(CRC)나 M&A부티크, 외국계 펀드를 앞세우고 있어 전주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차 낯선 사업자가 매출규모 수천억원의 회사를 인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은 매각 기업의 재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인수사업자의 경영능력 검증이라는 중요한 절차가 간과되고 있다는 얘기다. 법원과 채권단측은 현 상황에서 가격 이외에 달리 인수사업자를 평가할 만한 잣대는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법정관리기업 매각시장이 '투전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는게 업계의 우려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