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업계가 일본업체들의 저가공세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기술력과 자금력면에서 일본 반도체장비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업체들이 유일한 무기로 내세웠던 가격경쟁력마저 일본에 뒤진다면 입지가 크게 축소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불황이 지속되자 수주와 매출 급감을 견디다 못한 일본 장비업체들이 최근들어 국내 반도체업체가 발주한 장비 입찰가격을 크게 낮추는 추세다. 한 반도체장비업체의 관계자는 "최근 국내 반도체업체가 내건 장비 발주에 일본대형 장비업체가 기존 가격의 50%선으로 입찰가격을 낮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만약 일본업체들의 저가공세가 계속되면 국내 장비업체들은 설 땅을 잃게 될 가능성이높다"고 말했다. 다른 장비업체의 관계자도 "매출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일본 장비업체들은 차세대 장비 R&D(연구개발) 투자비를 이미 회계처리해 가격인하의 여지가 많다"며 "최근 이들의 저가공세는 점차 메인장비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한국업체들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메인(Main)장비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핵심 고부가가치장비를 말하며 지금까지 국내업체들은 저가의 주변장비를 주로 생산, 판매해 왔다. 국내 메인장비 시장은 일본과 미국 시장업체들이 독식해 왔으나 지난해부터 한국디엔에스, 케이씨텍, 주성엔지니어링 등이 웹스테이션, CVD(화학증착)장비 등 일부 메인장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전문가들은 일본업체들의 저가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내 장비업계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반도체업체의 대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G증권의 서도원 연구원은 "자금력과 기술력이 취약한 국내 장비업체의 사정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 등 반도체업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국내 업체와의 차세대장비 공동개발, 품질이 검증된 국산장비의 과감한 채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국내 메인장비업체가 육성되면 가격경쟁 유도, 기술유출 방지, 신속한 유지보수 등 반도체업체에 득이 되는 것도 많다"며 "국내 장비업체가 생존력을 갖출 때까지 반도체업체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