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4일 주가안정과 경영권보호를 위해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못하도록 "공시심사업무 처리지침"을 마련함에 따라 상장.등록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가뜩이나 수급불균형으로 주가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상장.등록기업의 강력한 주가관리 수단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미 자사주를 취득한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소각하려면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자사주소각에 대해 학계에서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업무처리지침을 확정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증권업계의 반응이다.

◆최후의 주가관리수단=자사주 소각은 말그대로 ''최후의 주가관리수단''이다.

주식소각을 통해 주식물량을 영원히 줄이게 되므로 그만큼 주가관리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햇동안 상장회사와 코스닥등록기업이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로 쏟아낸 주식물량은 41조1천1백40억원어치에 달한다.

이 때문에 증시는 만성적인 공급초과현상으로 침체일로를 걸었다.

이에 따라 상장·등록회사들은 주가관리의 노력으로 자사주취득을 애용해 왔다.

올들어 지난 5일까지 97개 상장기업이 자사주취득을 공시했다.

이들 기업중 상당수는 자사주 소각을 계획했지만 관련법규에 대한 해석이 명확치 않아 일시적인 주식유통물량 감소효과를 지닌 자사주취득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자사주 소각 사례=법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올들어 6건의 자사주 소각이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은 이중 서울증권과 다함이텍(옛 새한정기)이 증권거래법에 따라 자기주식취득신고서를 제출해 자사주를 취득한 다음 이를 소각한 것은 문제라고 뒤늦게 발목을 걸고 나섰다.

당시 서울증권은 법무법인 김&장의 자문을 받아 자사주 취득후 이익소각이라는 절차를 밟았다.

강진순 서울증권 경영기획팀장은 "증권거래법에 따라 자사주는 취득후 6개월내에 처분할 수 없도록 돼 있으나 법무법인 측에서 ''소각이 처분의 개념은 아니다''고 해석했으며 이를 금감원에도 충분히 알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당시에는 법적인 논란이 일었던 상황이었고 서울증권이나 다함이텍이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자사주소각을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밝힌 점을 감안해 행정조치를 내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후 파장=그러나 문제는 자사주소각을 목적으로 금감원에 자사주취득신고서를 제출한 뒤 실제로 주식을 사들인 기업이 앞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취득한 주식을 소각하지 못한다는 금감원의 지침에 따라 자사주를 소각하려면 최대한 6개월이라는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6개월뒤에 자사주를 시장에 내다 팔았을 때 주가에 미치는 악영향도 큰 부담이 된다.

결국 상장·등록기업의 강력한 주가관리수단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상장기업인 S사 임원은 "자사주소각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재경부가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금감원이 굳이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했다.

◆금감원의 입장=상법은 상법대로,증권거래법은 증권거래법대로의 법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애초부터 주식취득의 목적을 ''소각''인지 ''취득''인지 분명히 하게 함으로써 투자자들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함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소각목적이면서도 이를 몰래 숨기고 자사주 취득을 한 뒤 뒤늦게 소각을 발표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이야기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