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거래 자유화 보완책을 내놨지만 자본의 해외유출에 대한 우려는 식지 않고 있다.

예금부분보장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불안감을 느끼는 거액 재산가들이 내년 1월 동시에 시행되는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를 틈타 뭉칫돈을 대거 해외로 빼내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연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 외환거래 빗장이 풀리고 국내 유인책이 부족할 경우 이론상 최대 65조원의 뭉칫돈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국내 개인 금융자산(지난 6월말 현재 7백68조원)의 8.5%에 달하는 액수다.

◆ 국부유출 비상 =내년부터 개인 기업의 외환거래 한도 및 규제들이 대부분 폐지되거나 해제된다.

현재 1만달러까지로 제한돼 있는 해외여행경비나 건당 5천달러인 증여성 송금 등 국내 거주자의 대외 지급한도가 무제한으로 풀린다.

해외금융기관에 예금이나 부동산 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불안한 국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빼내 해외 금융회사에 맡기거나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예금부분보장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로 이동이 예상되는 자금은 1백조원에 이른다.

또 뇌물 등 변칙적으로 취득한 국내 돈세탁 자금 50조∼1백70조원까지 합하면 총 1백50조∼2백70조원이 외환시장 개방과 함께 이동 가능한 돈이다.

여기에 평균 자본유출률(23.9%)을 감안할 경우 35조∼65조원이 유출 가능한 규모라는 계산이 나온다.

자본유출률은 개도국의 경우 외환자유화 과정에서 유동자금중 어느 정도가 해외로 빠져 나갔는지를 추정한 것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이 활용하는 지표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거래 규제가 완화되면서 자본유출 조짐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관세청의 불법 외화 밀반출 적발액은 97년 3백22억원에서 올 1∼7월엔 1조2천8백75억원으로 급증했다.

◆ 유인책이 없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외환거래 자유화 실시에 따른 부작용을 견딜 수 있으며 보완대책도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안전장치는 △자본의 불법 유.출입을 감시하는 금융정보분석기구(FIU) 설치 △비상시 외국인 단기자본중 일부를 중앙은행에 강제 예치토록 하는 가변예치의무제 조항 유지 등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관이나 제도 자체에 대한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 증시 등 경제여건이 불투명한 데다 정부의 저금리 정책으로 대내외 금리차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국내에 자금을 묶어둘 별다른 당근책이 없다는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 식지않는 연기론 =재경부는 외환거래 자유화는 대외적인 공약인 만큼 이를 어겨 국제 신뢰도를 잃을 경우 더 큰 타격이 우려된다며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제도는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외환거래에 대한 문을 한꺼번에 열 경우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에 의한 자본유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부터 외환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푸는 정책은 다소 늦추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 전광우 소장은 "부작용이 많은 정책을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은 무리"라며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관들도 개도국의 외환자유화 계획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만큼 우리나라도 외환자유화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춘 전문위원.유병연 기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