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메릴린치 증권사가 작성한 한장의 보고서가 한국 시장을
강타했던 적이 있다.

반도체 산업이 상당기간 침체할 것이라는 이 보고서는 당시 우리 시장의
대표주이기도 했던 삼성전자 주가에 일격을 가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로써 회생불능
으로 곤두박질 쳤고 경기 관련 블루칩 전체의 동반하락을 초래했다.

한장의 보고서가 준 충격은 당시의 우리증시가 민감한 국면에 처해있었던
터여서 더욱 컸었다.

대표주에 대한 일격은 시장전체의 탄력을 근저에서부터 흔들어 투자심리를
위축시켜갔다.

최근 은행주가 꿈틀거리고 있다.

증권주와 은행주는 선부른 금융장세를 거론할 만큼 탄력을 얻으면서
기세좋게 상승하고 있다.

발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금융주가 한몫할 것이라는 감을 어렴풋이 잡고
있던 차였다.

이같은 흐름의 뒤에는 놀랍게도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가 도사리고
있다.

조지소로스는 전세계 증권 외환시장의 대표적인 승부사로 불리워져 왔던
바로 그 사람.

지난 80년대 중반에는 파운드화 시세를 놓고 감히 영국정부와 다투어
완승을 거두어 더욱 유명해진 사람이다.

조지소로스가 총지휘를 맏고 있는 퀀텀 펀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국의
금융주를 무차별로 사들여 놓고 있다.

그는 지난 94년 금융주 투자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보고 철수했다가 투자
금액을 오히려 수천억원대로 늘려 우리증시에 다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께.

그로서는 작심하고 뛰어든 복수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가 이번에는 과연 금융주에서 원풀이를 할수 있을 것인지가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으는 요즈음이다.

피델리티사는 전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관리 회사다.

자산규모가 1백50조원으로 우리증시의 싯가총액과 맛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회사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를 짐작할수 있다.

피터 린치등 당대의 전문가들이 이 거대한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한국시장 개방 이후 우리 주식을 매수해왔던 전체 외국인 지분의 적어도
4-5%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마젤란 펀드는 바로 이 피델리티사가
관리하는 펀드중 하나다.

최근들어 피델리티사의 한국 주식 매매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집중적인 매도에 가담해 주가하락을 부채질했고
최근에는 다시 활발한 주문을 내면서 물량 확보에 나서 있다.

그동안 외국언론들을 통해 이름만을 들어왔을 뿐이던 세계 자본시장의
승부사요 연금술사들이며 전문 투기가들인 이들이 우리증시에 이미 총출동해
있다.

최고 수준의 정보력, 분석력, 자금력(매매의 파워)의 삼박자를 갖춘 이들의
시장 지배력 가격결정력도 확대일로에 있다.

3월말 현재 증권감독원에 투자등록을 필한 외국인은 모두 4천5백여명.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주식은 전체 상장주식의 11%선인 16조원
남짓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을 11%선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

국내 기관들과는 달리 자산 운용 과정이 베일에 쌓여있다는 점, 따라서
얼마든지 단기 매매 집중매매가 가능하다는 점, 뛰어난 정보력에 의해
뒷받힘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장지배력은 증폭되고 있다.

추상적인 수치만으로는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게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외국인"이라는 보통명사 뒤에 숨어 있는 조지 소로스며 위렌 버펫이며
피터 린치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인가.

또 이들 전문 투기가들외에 미국의 은행과 연기금들은 전세계 증권시장을
어떻게 주무르고 있는가.

이제 "세계의 큰손" 시리즈를 통해 이들을 탐구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