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상 이익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가 망하는것을 흑자도산이라 한다.

물건이 안팔려 만성적자인 회사라면 도산하는것이 당연하겠지만 이익이
나는데 왜 문을 닫아야할까?

여기에 기간손익측정을 위주로 하는 현대회계의 맹점이 있다.

기업이 대규모의 설비투자를 하거나 재고자산 구매를 늘리면 회계상이익에
관계없이 자금수지는 나빠지며 은행에 교환회부된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제때에 현금으로 막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물론 부족한 자금을 빌려쓰고 이자를 주고도 남을만큼 수익성이 높은 투자
라면 장기적으로 자금수지에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예측이 빗나가 물건이
팔리지 않게되면 기업의 자금수지는 큰 압박을 받게된다.

그런데 물건이 안팔려 재고가 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회계상 익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왜냐하면 제품생산에 들어간 재료비, 인건비는 물론 공장에서 발생한 모든
경비가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다행이 다음해라도 쌓였던 재고가 제값으로 팔린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그 제품이 이미 시장에서 라이프 싸이클이 끝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기업은 부족한 운영자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겠지만 결국은 부도위기
에 처할 것이다.

그런데 회계상으로는 이같은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까.

가량 뒤늦게 PC시장에 진출한 회사가 막대한 원가를 투입하여 대량의
286PC를 생산했는데, 그해에 전혀 팔리지 않았을 경우 이는 회사경영에는
큰 타격이 되겠지만, 회계상으로 이들 PC가 고스란히 재고자산으로 남게
된다.

그후 PC시장에서 이미 286급은 제값 받고 팔기 어렵게 되었다는 판단이
들때 비로소 이들 재고자산을 적절히 감액처리한다.

이처럼 장기간 팔리지 않는 진부화된 재고자산에 대하여는 기업회계에서도
비용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자금수지 측면에서 보면, 이같은 회계처리는 자금지출과
비용인식시점 사이에 너무나 큰 시차가 있기 때문에 1년 단위로 작성되는
재무제표에는 실제의 기업상황이 제때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이미 사세가 기울어진 기업일수록 자신의 처지를 은폐하기 위해
비용처리를 주저함은 물론 남아 있지도 않은 재고를 장부상 자산으로 계상
하는 등의 분식결산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다.

도산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면 거의 예외없이 장부상 재고자산이
매년 증가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자산성이 없는 부실재고인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이유없이 매년 재고자산 금액이 급증하는 회사는 일달
영업부진에 따른 재정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절대금액 뿐만 아니라 매출액 대비 재고자산 회전율등 관련 재무비율
의 추이에도 주목해야 하겠다.

유재권 (공인회계사.삼일회계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