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미나리는 한국이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이다. 예로부터 도랑, 시냇가 등 습한 곳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어 임금부터 서민까지 즐겨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은 우리의 민족성과도 닮아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군집을 이루는 미나리처럼 낯선 미국에서 끈질기게 살아내는 한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하나 나쁜 사람은 없다. 그저 자신의 꿈을,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정 감독은 제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후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 그 언어는 영어나 외국어가 아닌 진심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대다. 생계를 위해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은 자신만의 꿈이 있다. 50에이커(약 6만 평)의 농장을 갖는 것이었다. 그는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아칸소의 한 시골 마을로 터를 옮겼다.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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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우리가 약속한 건 이게 아니잖아.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바퀴 달린 집'(트레일러 주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제이콥의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달라진 환경에 약간의 호기심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경작지 개척에 나선 제이콥은 물값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수맥을 찾아냈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동네 주민 폴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게 된다. 제이콥은 미국 현지 농작물이 아닌 한국의 것을 심고, 한인타운의 식료품점에 이를 팔 궁리를 한다.

남편 제이콥이 자리를 잡자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 일을 시작했다. 앤과 데이빗의 케어를 위해 한국에 있던 엄마 순자(윤여정)에게 도움을 청한다.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엄마, 미안해. 우리 사는 꼴 다 봤네.

순자에게 모니카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더 잘 살지 못해서, 더 좋은 곳에서 맞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딸 앞에서 순자는 바퀴 달린 집이 재밌기만 하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한국에서 이고 지고 온 봇짐을 푼다. 멸치, 고춧가루, 미나리 씨,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손주 데이빗을 위한 한약까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데이빗에게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의문의 존재다. 입에 쓴 약을 주고, 입으로 밤을 씹어 건넨다. 할머니를 처음 본 데이빗은 순자에게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한다. "할머니 같은 게 뭔데"라고 순자는 되묻는다. 데이빗은 "쿠키도 만들고 욕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고"라고 한다. 데이빗은 '산에서 온 이슬 물'(마운틴듀)라고 속이고 자신의 오줌을 넣은 컵을 건네며 심술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제이콥이 농장을 일궈낼 때 순자는 산기슭 냇가를 찾아 미나리 씨를 뿌린다. "미국 애들은 미나리가 좋은 건지 모르지?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 순자는 데이빗에게 용기를 주고, 공통적인 면을 공유하며 가까이 다가간다. 오줌을 싸고 팬티를 숨기는 데이빗에게 순자는 토닥여주기는커녕 "페니스 브로큰"이라며 농을 친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는 데이빗을 지켜주겠다며 꼭 안아주는 순자. 데이빗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순자가 더 많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한국 채소들이 비옥한 미국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제이콥과 폴은 이를 식료품점에 되팔 생각에 한껏 들떴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포부만큼 잘 풀리지 않는 남편의 모습은 모니카를 불안하게 만들고, 아칸소를 떠나 데이빗의 병원과 가까운 도심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순자를 두고 데이빗의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온 이 가족은 뜻밖의 낭보를 접한다. 기쁨도 잠시 집으로 가는 길, 제이콥 가족은 농장 저장고 위로 치솟은 불길을 보게 된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몸을 던져가며 불을 껐고, 순자는 자신의 쓸모없음을 한탄하며 삶의 의지를 잃었다.그 순간, 손주 앤과 데이빗이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가지 마세요, 할머니." 불이 진화되고 남은 건 가족뿐이다. 제이콥 가족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제이콥은 순자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빗을 데리고 미나리를 캐며 가족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사진=판씨네마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정 감독은 미국에 이민 온 부모님을 두었으며,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아칸소의 한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미나리'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사를 낭만화 하지 않은 데 있다. 제이콥의 가족을 통해 우리의 아빠, 엄마, 할머니, 아들 등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민을 가지도, 농장에서 자라지도 않은 관객들에게 우리 부모, 조부모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불러일으킨다. 미나리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 이런 것처럼 자녀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터치로 연출했다.

'미나리 팀'이라 불리는 배우들의 호연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제작과 연기를 도맡은 스티븐 연은 예전보다 한결 자연스러운 한국어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한예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을 그려냈다. 순자는 희극적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가족에게 심오한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윤여정이 순자의 미묘한 지점을 '원더풀'한 연기로 풀어냈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의 연기 커리어 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역할이었다.

'미나리'는 고정관념과 감상주의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국경이나 문화를 뛰어넘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 세계 75관왕을 기록해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윤여정은 '미나리'로만 전미 비평가위원회부터 LA, 워싱턴 DC,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온라인,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오클라호마,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뮤직시티, 노스캐롤라이나, 노스텍사스, 뉴멕시코, 샌디에이고, 아이오와, 콜럼버스, 사우스이스턴, 밴쿠버, 디스커싱필름, 미국 흑인 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골드 리스트 시상식,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까지 총 26개의 연기상 트로피를 차지하며 오스카 입성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미나리'는 3월 3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한줄평: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기우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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