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 영화 배우 김하늘과 호흡을 맞춘 멜로 '나를 잊지말아요' 이후 배우 정우성의 지난 3년간의 활동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상남자'였다. 영화 '아수라', '더 킹', '강철비', '인랑' 등에 차례로 출연하면서 남성들의 욕망, 성공과 배신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선보여 왔다. 그랬던 정우성이 가슴 따뜻한 변호사로 돌아왔다.

영화 '증인'은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민변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가 성공을 위해 무조건 무죄를 만들어야 하는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과 마주하면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던 인간성을 자각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정우성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호를 통해 극을 이끌어간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정우성의 마음을 흔든 시나리오

정우성은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시나리오라고 답했다.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에요. 시나리오를 읽고 만족도가 커서 덮자마자 하겠다고 했어요. 의식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상업영화가 갖춰야할 규모나 여러 요소들이 있잖아요. 그걸 배제한 작품이었어요. 전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작품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근 몇 년간 선굵은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전혀 다른 톤의 인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낯설법했지만 정우성은 "어색함은 없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라는 생소한 소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를 전했다. 정우성은 "발달 장애라는 건 달리 말하면 적당히 여러 부분이 발달한 정상인보다 어느 한부분이 극도로 발달돼 어느 한 부분에 결핍이 온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영화 '엑스맨' 속 히어로들도 어느 한 부분이 초능력으로 발전한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우성이 '증인'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교감이었다. 순호가 발달 장애를 가진 지우와 교감하면서 영화는 코 끝 찡한 감동을 자아낸다. 정우성은 "그런 느낌들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했다"며 "강요하지 않지만 잔잔한 여운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김향기, 정우성/사진=영화 '증인' 스틸
김향기, 정우성/사진=영화 '증인' 스틸
◆ 정우성 품에서 빵을 먹던 아기가…

교감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 외에 김향기와 더욱 친해지려 노력했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성격인 김향기를 위해 조금씩 친근하게 대하며 친분을 쌓아간 것. 정우성의 노력에 김향기 역시 "항상 현장을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재개그를 했어요. 아저씨가 하는 개그니까 아재개그 맞죠?(웃음) 향기 씨의 성격에 맞게 접근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꼭 많은 얘기를 해야 친해지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교감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앉아있으면 '슥' 가서 앉고 그랬죠."

사실 김향기와 정우성은 17년 전 한 제빵 브랜드 광고를 함께 찍은 인연이 있다. 정우성은 "현장에서 처음 인사를 할 때까지도 그 아기가 향기인줄 몰랐다"면서 미소를 보였다.

"'참 많이 컸구나' 싶었어요. 동시에 '아, 그럼 나도?' 싶기도 했죠.(웃음) 여진구도 제 무릎에 앉힌 기억이 있는데, 그때 진구는 10대였고, 그 후 활동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덜 했는데, 향기는 그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놀랐던 거 같아요."
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정우성/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정우성은 올해로 데뷔 25년째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톱배우다. 동시에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정치적인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는 소신있는 배우로 꼽힌다. 이전까지 착한 행보와 더불어 '증인'에서도 착한 모습이 더해지는 만큼 정우성에게 영화 속 대사인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를 물었다.

"착한 이미지가 더해지면 영화가 성공했다는 의미니까 다행 아니냐"면서 되묻던 정우성은 "착한 것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위험한 것 같다"면서 솔직한 견해를 전했다.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관계 안에서 예의, 사회 안에서 자기 애, 직분 안에서 바름을 추구하는 걸 착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어느순간 교육의 순간에서 조차 '착하면 손해다', '매력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정도를 갈 필요가 없다', '적당한 타협도 상관 없다'는 의미니까 얼마나 무서운 얘기에요. 착하게 사는 건 재미없고, 심심하고, 외로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걸 뚝심있게 지킬 수 있다면 그 빛은 은은하고 온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우성은 이처럼 소신을 지키고 자신 나름대로 바름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으로 고등학교를 자퇴와 영화 '비트'를 꼽았다. 정우성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모델로 활동하다가 연기자가 됐다. 배우로 데뷔한 지 3년 만에 선보인 '비트'는 청춘들의 방황을 그리면서 정우성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학교를 일찍 그만둔 게 자랑은 아니에요. 가끔 아쉬울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제도권 밖에서 혼자 자랐기 때문에 때묻을 기회가 없었어요. 조직 안에서 상하 서열이나 행동 양식을 배우면서 다수가 그러니 조용히 따라갈 수 밖에 없잖아요. 관계를 위해 타협해야하고.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웠죠. '비트'는 저에게 많은 걸 줬지만, 영화가 갖는 사회적 파장, 배우가 갖는 영향력 등을 인식하게 했어요. 그 당시 조폭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면서 폭력의 희화, 미화가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스스로 지양하게 했죠."

그러면서 앞으로도 스스로의 윤리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저는 공인이 아닌 공인이라고 생각해요. 직업군으론 공인이 아니지만, 명성이 주어진 만큼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질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제 직업 안에서 사소하게라도 윤리관을 지키며 살려고 해요. 예산이 적거나, 비상업적인 영화에 참여한다거나, 저보다 경험이 적은 새로운 영화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저의 경험을 나누는 선택을 한다던가. 그런 작은 시도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게 되지 않을까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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