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CGV에서 메가박스로 간판을 바꾼 상암월드컵경기장 내 멀티플렉스. 3대 극장사업자의 치열한 확장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가박스 제공
15년 만에 CGV에서 메가박스로 간판을 바꾼 상암월드컵경기장 내 멀티플렉스. 3대 극장사업자의 치열한 확장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가박스 제공
9개 스크린을 갖춘 메가박스 100호점이 지난 7월4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 문을 열었다. 15년간 영업한 CJ CGV를 리모델링한 뒤 메가박스 간판으로 바꿔 단 것이다. CGV와의 임대차 계약 만료로 서울시설관리공단이 4월 실시한 입찰에서 메가박스가 CGV보다 30% 이상 많은 32억7500만원의 연간 임차료를 써냈다. 이렇게 탄생한 메가박스 상암점은 CGV, 롯데시네마 등 3대 멀티플렉스 간 치열한 스크린 확장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브레이크 없는 스크린 확장 경쟁

상반기 관객 1% 감소에도 스크린 수는 3.2% 늘어
국내 스크린의 92%를 점하고 있는 3대 극장은 지난해 166개 스크린을 새로 늘린 데 이어 올해도 약 200개 스크린을 새로 걸 전망이다. 올 상반기 국내 영화 관객이 1%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스크린 수가 공급과잉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수익성 악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3위 사업자인 메가박스는 6월 말 기준 스크린 수를 2016년 말에 비해 15% 늘렸다. 당시 85개 극장, 590개 스크린에서 1년 반 만에 100개 극장, 680개 스크린으로 확장했다. 상암점과 고양스타필드 9개관, 서울 강동 10개관, 마산 6개관, 미사강변 5개관 등이다. CGV는 같은 기간 스크린 수를 12% 늘렸다. 극장 133개, 스크린 996개에서 극장 151개, 스크린 1117개로 몸집을 불렸다. 롯데시네마는 이 기간 극장 4개, 스크린 43개를 늘리는 데 그쳤다.

◆메가박스, 플래그십 찾기 위해 출혈

3위 사업자인 메가박스가 빠른 속도로 스크린을 확장한 비결은 위탁점주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를 티켓 매출의 2% 수준만 받고 식음료와 광고 매출은 위탁점주가 모두 갖도록 했다. CJ CGV와 롯데시네마는 티켓 매출의 3%, 식음료 매출의 1%를 받는 조건이다. 메가박스는 관객 유치를 위해 마케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리클라이너관(의자가 뒤로 젖혀지는 상영관)의 경우 1만4000원을 내면 추가 한 명을 무료로 입장시켜주고, T멤버십 고객에게 콤보 음료·팝콘을 무료로 주기도 했다.

메가박스는 1, 2위 극장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스크린 수 확장에 적극적이다. 극장 사업은 일정 규모의 스크린을 확보해야 광고 유치가 수월해지는 등 외형이 성장해야 경쟁력과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 임차료가 하루 900만원꼴인 메가박스 상암점은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게 극장업계 예상이다. 하지만 상암점은 연간 100만 명 이상 관객을 모으는 대형관이기 때문에 서울 서북지역 플래그십을 찾고 있던 메가박스에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메가박스는 지난 15년간 단일 극장 국내 1위였던 코엑스점이 CGV용산점, 롯데시네마 잠실타워점과의 플래그십 경쟁에서 밀려나 브랜드가 약화됐다.

◆과당경쟁으로 공급과잉 직면

CGV는 1위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스크린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1위 브랜드는 고객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직영점 비중이 80%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롯데시네마는 지난 3년간 스크린 확장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공격 경영에 맞서 올 들어 위탁점을 중심으로 스크린 확장 경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상반기 개관한 4개 극장 중 3개가 위탁점이었다. 하반기에도 위탁점을 포함해 6개 극장을 새로 개관할 예정이다.

이 같은 스크린 확장 경쟁에 대해 CJ CGV 관계자는 “새로운 공간 창출로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며 “대규모 쇼핑몰에 입점하면 수익성이 있다”고 말했다. 새 극장이 주변의 약한 극장을 대체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영화 관객 수가 수년째 정체인 것을 감안하면 과잉 투자라는 게 업계 평가다. 지난해 전체 영화 관객은 1.3%, 티켓 매출은 0.8% 증가했다. 올 상반기 전체 관객 수는 1.0% 감소했지만 스크린 수는 3.2% 늘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국내 스크린 수는 지난해 말 2766개로 사실상 포화상태”라며 “극장들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