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 광기에서 자유로운가"

정상과 비정상,이성과 비이성,정상인과 미치광이...

손톱만큼의 영역도 공유하지 않는 대립항들은 시대와 제도에 따라 그 경계를 달리해왔다.

새로 그어진 금들은 새로운 광인을 만들어 격리시켰다.

때론 관습에 항거하거나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손쉽게 처리해주는 잣대가 됐다.

24일 개봉되는 "처음 만나는 자유"( Girl,Interrupted )는 정신병원에 갇힌 소녀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간의 모호한 경계를 조심스레 더듬는다.

1993년 발표당시 11주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던 수재너 케이슨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배경은 60년대말 미국.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7세 소녀 수재너(위노나 라이더)는 보드카 한병에 한움큼의 아스피린을 삼켜 병원에 실려간다.

의사는 "두통을 없애기 위해"라는 수재너의 말을 묵살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미수에다 "인격경계 장애"라는 병명을 붙여 정신요양원인 클레이무어로 보낸다.

그곳에는 다양한 정신불안에 시달리는 소녀들이 격리되어 있다.

신경증적 거짓말쟁이 조지나(클레어 듀발),열살때 얼굴에 석유를 붓고 성냥을 그은 폴리(엘리자베스 모스),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당해온 데이지(브리트니 머피),신비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사회부적응자 리사(안젤리나 졸리).

엄격한 규율로 환자들을 억압하는 폐쇄된 공간이지만 아름답고 강인한 리사를 중심으로 소녀들은 은밀하고 즐거운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룬다.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모습은 "매그놀리아"에서 처럼 찡하다.

리사와 수재너는 특별한 동질감으로 묶여간다.

현실과 교차되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수재너를 짓누르던 억압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친구의 아버지이자 부모의 친구인 남자와 성관계를 맺은 자책감,일류대 진학을 강요하던 학교,위신을 중시하는 중산층 부모의 허영 등 그를 둘러쌌던 모순들이 의식위로 불거진다.

하지만 그토록 매혹적이던 리사에게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수재너는 이들을 떠나 세상과 소통의 문을 연다.

원작이 수재너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는데 초점을 맞춘 반면 영화는 관습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경직된 사회의 책임을 들춘다.

"광기"의 정의를 집요하게 파고든 밀로스 포먼 감독의 75년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주제가 닿지만 은유나 메시지의 강도는 낮다.

주인공들의 고통을 공감하기엔 60년대가 너무 멀고 관습에 희생된 아픔을 공유하기엔 정서적 울림이 약하다.

사슴처럼 부드럽고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망울의 위노나 라이더도 매력있지만 숨막히도록 매혹적인 얼굴로 반항기와 광기를 내뿜는 안젤리나 졸리의 눈부신 연기가 화면을 압도한다.

명배우 존 보이트와 배우겸 모델인 마셀리니 베르트랑 사이에서 태어난 졸리는 이 작품으로 올해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전미방송영화비평가협회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따뜻한 심성의 간호사 발레리 역의 우피 골드버그도 무게를 더한다.

감독은 "캅랜드"의 제임스 맨골드.위노나 라이더도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