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소비재 기업이 인플루언서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건 이들의 영향력이 업계 전반의 판을 뒤흔들 정도로 막강해졌다는 점이 여러 사례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30억달러(약 3조9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640억달러(약 83조87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세계 최대 제조·직매형의류(SPA) 브랜드 쉬인이 대표적이다. 중국 브랜드인 쉬인은 2010년대 초반부터 이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시작했다. 지금은 2316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등을 거느리고 있다. 쇼트폼 동영상 등을 앞세워 세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사로잡아 작년엔 전년보다 50.0% 급증한 240억달러(약 3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상품 기획부터 개발까지 꽉 잡은 SNS 스타…"이들이 곧 트렌드"

마케팅 효과 톡톡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인플루언서들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채널로는 TV홈쇼핑이 첫손에 꼽힌다. 홈쇼핑 업체들은 쿠팡 등 e커머스 강자에 밀려 입지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커머스’를 미래 먹거리로 밀고 있다. 업계에선 ‘예능·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자연스럽게 물건을 판매하는 콘텐츠 커머스엔 스토리텔링에 능한 인플루언서가 제격’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GS샵이 지난해 론칭한 뷰티 브랜드 ‘티르티르’와 ‘블랑두부’는 인플루언서들이 제품 개발부터 프로그램 진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다. 두 브랜드의 매출(방송시간 1시간 기준)은 일반 뷰티 상품보다 30%가량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아 콘텐츠에 대한 제재가 비교적 덜한 라이브커머스(라방)에선 인플루언서와 협업한 브랜드의 성과가 더욱 눈에 띈다. GS샵의 라이브커머스 ‘샤피라이브’에서 지난달 판매한 ‘라비앙’의 스킨케어 제품은 방송 1시간 동안 주문금액이 7400만원에 달했다. 라비앙은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16만9000명 보유한 인플루언서 박현선 씨가 론칭한 브랜드다.

이처럼 인플루언서의 전문성이 강화되고 활동 영역이 넓어지자 이들의 소속사 역할을 하는 멀티채널네트워크(MCN)의 덩치도 커지고 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지난해 매출은 1462억원으로 2020년(879억원) 대비 66.3% 늘었다. 유아동 콘텐츠 전문 MCN인 캐리소프트의 매출은 같은 기간 62억원에서 101억원으로 62.9% 증가했다.

제도권에 속속 편입

일부 인플루언서는 대기업과 협업하는 수준을 넘어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을 정도다. 2015년 네이버 블로그 마켓을 통해 패션 장사를 시작한 김다인 마뗑킴 대표는 그 자신이 12만7000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SNS를 통한 시장조사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2018년 론칭한 마뗑킴을 지난해 매출 5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마뗑킴은 급속한 경기 둔화로 패션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도 올해 1000억원을 훌쩍 웃도는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백화점마저 모시기에 혈안이다.

굴지의 유통 대기업에 스카우트돼 상품기획 및 소싱, 마케팅 노하우를 전수하는 인플루언서도 있다. 김범수 SSG닷컴 상무는 미식 인플루언서 ‘팻투바하’로 활동하다 2011년 신세계그룹에 영입됐다. 2020년부터는 SSG닷컴에서 큐레이션 담당 상무로 근무 중이다. 프리미엄 제품이나 최신 유행하는 상품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시니어 시장’도 커질 듯

유통업계에선 이 시장이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라방 사업을 강화하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자 쉽게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게 첫 번째 이유다. 유튜브는 지난해 플랫폼 이용자가 손쉽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튜브 쇼핑’ 서비스를 선보였다. 콘텐츠 제작자가 영상에 제품 상세정보·결제 페이지를 링크할 수 있는 기능도 적용했다.

고령층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활용도가 높아진 것도 인플루언서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70세 이상 인구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률은 2019년 47.1%에서 지난해 82.4%로 급상승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나이 많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활동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