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급여액 감소를 무릅쓰고 지급 개시일을 앞당기는 조기 수급자가 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라 늘어나는 연금 급여액을 줄여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연 소득 2000만원이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돼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5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수급 연령(올해 63세)이 도달하기 전 연금을 신청한 조기 수령자는 지난 2월 기준 77만7954명으로 집계됐다. 전달(76만4281명)보다 1만3673명(1.8%) 증가했다.

전체 노령연금(장애·유족연금 등을 제외한 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수급자 537만9562명 가운데 조기 수급자 비중은 14.5%였다. 이들 조기 수급자의 평균 급여액은 월 65만728원으로 조사됐다.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인 경우보다 37% 적었다.

가입기간 10년이 넘고 소득이 없으면 지급 개시 연령보다 최대 5년을 앞당겨 조기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연금을 1년 앞당길 때마다 6%씩(최대 30%) 급여가 삭감된다. 이런 불이익에도 조기 노령연금 수급자는 매년 늘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조기 수령자는 2018년 58만1338명에서 2019년 62만8832명, 2020년 67만3842명, 2021년 71만4367명, 2022년 76만5342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건보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연금 조기 수령을 택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에는 연 소득 3400만원 이하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됐다. 하지만 작년 9월부터 연 2000만원 이하로 강화되면서 연금을 포함한 월 소득이 167만원 이상인 사람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건보료를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물가 인상분이 반영되면서 노령연금만으로 월 소득 160만원이 넘는 사람은 작년 9월 9만784명에서 올 2월 기준 14만4674명으로 급증했다. 소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건보료 폭탄’을 맞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연금을 깎아주는 조기 신청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올해 연금 수급 연령이 62세에서 63세로 상향된 영향도 있다. 예컨대 올해 62세가 된 사람은 작년 기준대로라면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올해는 제외되기 때문에 이들 중 조기 신청자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급 연령이 늦춰진 2013년과 2018년 조기 신청자는 전년 대비 각각 5912명(7.5%), 6875명(18.7%) 증가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