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최근 14년 만에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의료계 반대가 만만치 않아 향후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가입자 대신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산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5월 열린 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아직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본회의 등 절차가 남아 있다. 이들 관문을 모두 통과하면 종이 서류를 팩스로 보험사에 넘기던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동시에 보험업계의 숙원이기도 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종이문서를 받고 심사한 후 전산에 입력·보관하는 단순 업무가 경영상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문서가 아니라 팩스나 스마트폰 앱으로 청구하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관련 업무 부담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아직도 담당 직원들이 전송받은 종이서류 사진을 화면으로 보고 심사해야 하는 등 비효율이 적지 않다.

이런 불필요한 업무는 매년 가중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인 실손 보험금 청구건수는 최근 큰 폭으로 늘었다. 2016년 5576만건이던 청구 건수는 2020년 1억626만건으로 급증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금 청구를 위해 연간 약 4억 장의 종이가 낭비되고 있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도 청구 전산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보험개발원 등을 전송 대행기관으로 지정하면 비급여 의료비 심사에 관련 개인정보가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전송 대행기관이 진료 정보 등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보관해서는 안 된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고 일축한다. 심평원 등 법적 근거가 있는 공적업무 수행기관이 전송을 맡으면 정보 보안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청구 간소화가 소비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부 소비자단체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보험계약 인수·지급 심사가 강화되고, 보험료가 할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청구 방식만 전산화하는 것일 뿐 기존과 동일한 증빙자료를 제출받는 상황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가입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전산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전산 심사나 자동 심사가 가능해지면서 보험금 지급이 신속·정확해질 것”이라고 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