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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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참석률 100%, 전문성 및 윤리성 최고 수준.’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매년 3월이면 공시하는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담긴 사외이사 활동 내역이다. 분량이 2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만 놓고 보면 사외이사들은 금융지주 경영진을 충실히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3연임에 도전했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해 12월 전격 사퇴를 선언하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올 1월 갑작스럽게 사임을 밝힐 때 정작 사외이사들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표방하는 금융지주의 현주소다.
"서로가 서로를 임명"…금융지주 회장 '연임 거수기' 된 사외이사

‘연임 도구’ 전락한 사외이사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뚜렷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8개 은행계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회장 후보를 추천하고, 은행장 등 자회사 대표 후보도 결정한다. 총자산이 3000조원을 넘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임명이 사외이사 손에 달린 셈이다. 사외이사 역시 동료 사외이사들이 후보를 천거하는 ‘셀프 추천’ 방식으로 선임된다.

이사회 구성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지만 금융지주 회장들이 사외이사 후보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회장은 퇴직 관료나 교수와 직접 접촉해 사외이사직을 제안하기도 한다.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선임된 사외이사들은 회장을 연임시키는 유착 관계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1년 금융지주가 출범한 이후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연임에 실패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라응찬 신한금융 초대 회장(4연임)과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4연임)은 10년 가까이 회장을 지냈다. 현직 중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오는 11월 20일 3연임 임기가 끝난다. 한 전직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금융지주는 회장부터 사외이사까지 모두 ‘셀프 연임’하는 구조”라며 “‘금융지주 회장은 처음에 되기가 어렵지 한 번 되면 10년은 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도 사외이사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결권 자문사도 ‘연임 반대’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지난 1월 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 개선을 지적했지만 올해도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얼굴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 사외이사 후보를 공개하지 않은 농협금융을 제외한 7개 금융지주 주주총회 후보에 오른 사외이사 37명 중 62.2%(23명)는 연임 후보다. 4대 금융지주만 놓고 보면 연임 후보가 18명으로 전체 후보(25명)의 72%에 달한다. 카드사와 은행 등 계열사(3년)를 거쳐 한 회사(계열사 포함)에서 사외이사를 맡을 수 있는 최장 기간인 9년 임기에 도전하는 사외이사 후보도 2명이나 있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관례화된 연임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는 4대 금융지주 주총 안건 관련 보고서에서 신한·하나·우리금융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반대 권고 의견을 냈다. 채용 비리와 라임펀드 사태,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는데도 사외이사들이 CEO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이사회 의결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4대 금융지주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각 사 이사회에서 논의한 135개 안건 중 100%인 135건이 찬성 의결됐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의결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낸 경우도 신한금융 3건, 우리금융 1건에 그쳤다. 한 금융지주 이사회 사무국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이 안건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마치고 참석하는 이사회는 조율된 방안을 최종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여서 찬성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