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
올 들어 한국 증시에서 갑자기 로봇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로봇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하고, 로봇 ETF(상장지수펀드)도 나오고 있는데요. 로봇이 미래 산업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로봇이 나온 게 사실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고. 조금 뜬금없는 느낌도 있죠. 그래서 뭔가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뭔가 있었습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로봇 회사에 투자한 것인데요. 레인보우로보틱스란 회삽니다. 이름만 보면 외국 회사 같은데, 한국 토종 회삽니다. 코스닥에 상장돼 있어요. 삼성전자가 590억원을 들여 지분 약 10%를 확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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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별 건 아니에요. 작년 매출이 300조원을 넘었고, 한 해 수 십조원씩 투자하니까, 590억원은 '껌값'이죠. 투자 규모가 너무 작아서 공시할 필요조차 없어요. 더구나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매출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100억원 조금 넘어요. 100억을 우습게 봐서 죄송한데, 삼성전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또 삼성전자가 투자를 잘하는 편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지분 투자해서 주가가 오른 곳이 드뭅니다. 디앤에프, 에프에스티, 엘오티베큠 등등. 투자하면 전부 마이너스 났어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증시에선 난리가 났느냐. 그림이 나오거든요.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이런 거 정말 잘 만드는 삼성인데. 로봇 만들면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지 않을까 하는. 이번 주제는 삼성의 로봇 밑그림 그리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입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가 투자했으니까 레인보우로보틱스란 회사가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요. 시작은 학내 벤처였어요. 한국과학기술원, 카이스트 실험실에 모인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혹시 휴보란 로봇 기억하세요? 그럼 아시모는요? 혼다가 2000년에 두 발로 걷는 아시모를 발표해서 세계가 깜짝 놀랐는데요. 이거 보고 로봇 시대 금방 올 줄 알았죠. 요즘 인공지능 챗 GPT가 너무 똑똑해서 충격받은 사람들 많은데요. 아시모도 그때 꽤 충격을 줬습니다. 23년 전인데, 지금 봐도 꽤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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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시모를 보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란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나도 저거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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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년 만에 정말로 만들었습니다. 2004년 휴보를 내놔요. 이게 꽤 괜찮은 로봇이었는지, 해외에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옵니다.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지금도 만들기 힘든데, 그땐 정말 귀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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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보 한 대 팔면 5억원쯤 받았는데, 2011년에 주문이 8대나 들어왔대요. 그럼 40억원인데. 이걸 대학 연구소에서 돈 받고 계속 팔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원에 다녔던 오준호 교수의 제자 이정호 씨가 이때 회사에 합류했는데요. 지금은 대표를 맡고 있죠. 오준호 교수는 최대주주 겸 최고기술책임자로 있고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레인보우란 사명은 그냥 좋아 보여서 지었다고 합니다. 큰 뜻이 있진 않아요. 근데, 사람들이 자꾸 '동성애와 관련 있는 회사냐' 이렇게 물어서. 레인보우에 로보틱스란 이름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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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후에도 한동안 휴보만 만들어요. 그러다가 2015년에 덜컥 사고를 칩니다. 미국 국방성 산하기관이 주최한 재난구조용 로봇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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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가 천재들만 다닌다는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 세계 최대 무기 생산기업 록히드마틴, 그리고 MIT와 도쿄대 이런 세계적인 대학들이었어요. 이 대회에선 로봇이 8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요. 밸브 잠그기, 드릴로 벽 뚫기, 장애물 통과하기, 계단 오르기 이런 것들이에요. 휴보가 완벽하게 과제를 수행해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근데 기술은 좋은 것은 알겠는데. 팔아서 돈을 벌어야죠.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18년 협동 로봇 사업에 뛰어들어요. 협동 로봇은 사람과 함께 작업을 하는 로봇을 의미하죠. 기존에 로봇을 주로 썼던 곳이 자동차 공장 같은 산업계였는데. 협동 로봇은 이걸 일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치킨집에서 닭 튀기고, 커피숍에서 커피 내려 주고,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담는 역할을 합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휴보는 일 년에 열 대 팔기도 힘든데. 이런 협동 로봇은 수요가 훨씬 많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도 기업이니까 매출을 늘리기 위해선 수요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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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걷는 로봇을 포기한 것은 아닌데요. 기술을 더 쌓죠. 사족보행 로봇, '로봇개' 라고도 하는데. 네 발로 다니는 로봇도 내놓습니다. 로봇개는 평지뿐만 아니라 산악 지형이나 장애물이 있는 곳도 잘 다니는데요. 로봇개에 카메라를 달아서 정찰용으로 쓰거나, 등에 짐을 싣게 해서 택배를 나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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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로보틱스는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에요. 이 회사보다 훨씬 큰 로봇 회사들도 많지만, 부품이나 소프트웨어는 자기 것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핵심 부품을 대부분 직접 만들어 쓰고. 소프트웨어도 직접 개발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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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가도 다른 로봇 회사에 비해 훨씬 싸죠. 어디서 사오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 회사가 매출이 작은데도 이익을 내는 게 이런 원천 기술이 있기 때문이죠. 사실 로봇 회사 중에 이익 내는 곳은 아직 거의 없습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투자를 한 것도 원천 기술 때문인데요. 삼성전자는 590억원을 이 회사에 주면서 두 가지를 요구했어요. 이사회에 자기들 사람 한 명 심겠다. 이건 돈 주는 입장에선 당연하고. 두 번째가 핵심인데요. 오준호 교수 등 경영진이 자기들 동의 없이 지분 팔고 못 나간다. 만약 팔고 싶으면 우리한테 팔아라. 우리가 사줄게.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러니까 삼성전자는 사실상 오준호 교수 등 경영진의 머리에 투자한 것이죠. 회사 자체만 보면 별 건 없으니까. 직원이 100명이 안 되고. 매출도 작고요. 이런 계약 사항만 봐도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유망한 회사 같은데.

주가가 그래서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삼성전자가 투자한 가격이 주당 3만400원인데요. 두 달 만에 주가가 세 배나 뛰어서, 2월 말 기준 9만2600원까지 올랐어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가량 합니다. 비슷한 규모의 솔브레인 매출이 연간 1조원이 넘어가는데요. 단순 계산으로 투자자들은 비슷한 규모의 회사보다 '잠재력이 100배 더 크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럼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봇이 진짜 많이 팔릴 것 같냐.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그렇다' 입니다. 우선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요즘 열심히 개발 중인 협동 로봇. 이게 10년 전 전기차처럼 수요가 폭발하기 직전인 것으로 많이들 분석합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인데요. 세계 중앙은행들이 작년부터 물가 잡겠다고 금리를 가파르게 올렸는데, 물가가 잘 안 잡히고 있죠. 그 주범이 인건비 상승이에요. 경제가 안 좋다는데 미국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이고. 월급 올려줘도 직원 못 구해서 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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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이민자 정책을 강화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있고. 한국, 대만, 일본, 독일 이런 제조 강국에 미국이 요구하죠. 미국에 공장 지어라. 이렇게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해서 일자리가 미국에 많기도 합니다. 또 코로나 이후에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어서 원치 않는 일은 잘 하지 않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인건비가 계속 치솟고 있어요. 미국 중앙은행도 매달 고용 지표만 쳐다보고 있을 정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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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업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직원 구하기도 힘들고, 간신히 구해도 월급을 계속 올려줘야 하니까.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싶은 맘이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특히 공장도 그렇지만 현재 가장 사람 구하기 힘든 영역이 음식점, 카페, 호텔 같은 서비스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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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주 입장에선 직원 연봉이 3000만원인데, 3000만원짜리 로봇이 이걸 대체할 수만 있다면. 불평도 없고, 월급 안 올려줘도 되는 로봇 쓸 가능성이 높겠죠. 물론, 이건 로봇이 그만큼 역할을 해줘야 가능한데요. 요즘 레인보우로보틱스 같은 곳의 협동 로봇 기술이 이 기대치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평가가 됩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이건 비단 미국 만의 얘기는 아니고. 한국도 여러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예요. 특히 운수 창고업. 쿠팡 같은 물류센터나 쿠팡맨 같은 배송 기사들이죠. 그리고 숙박과 음식점. 이런 곳에서 일손이 많이 부족합니다. 결국 협동 로봇의 상용화는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기술이 쓸 만 해질 정도로 올라가고, 생산 단가가 인건비 수준으로 내려가면 폭발적으로 확산할 수 있어요. 그게 1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또 산업용 로봇도 점차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동 로봇으로 바뀔 겁니다. 지금은 로봇 팔이 하는 공정과 사람이 일하는 공정이 분리됐는데, 점차 이 구분이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어요. 전기차 공장은 실제로 조금씩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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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에서 가장 의욕을 보이는 곳이 테슬라죠. 작년에 테슬라가 처음 로봇을 선보였는데. 당장 자기들 공장부터 적용할 계획에요. 아마존,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 회사들도 협동 로봇을 도입하고 있어요. 물류센터에서 짐 나르는 건 이미 상당 부분 로봇이 하고 있고. 사람 손에 의존하는 물건을 집어서 분류하고, 상자에 넣는 것까지 완전히 로봇으로 대체하는 중이에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는 로봇이 유망하니까 돈 조금 투자해 본다. 이런 수준은 아니고. 로봇에 정말 힘을 쏟고 있어요. 세계 최대 가전쇼 CES에서 2019년에 보행을 돕는 '입는 로봇' 젬스를 선보였고, 2021년에는 가사일을 돕는 로봇 핸디도 내놨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로봇 태스크포스 팀을 로봇 사업팀으로 확대하고 로봇 개발자도 엄청나게 뽑고 있어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가 로봇에 주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요. 우선 시장 규모가 지금 하는 사업인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보다 클 수 있고. 또 로봇이 잘 팔리면 그 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도체가 많이 필요할 테니까.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데도 유리합니다. 요즘 반도체 팔 곳이 없어서 '덜 만들어야 하나' 하고 삼성이 고민 중인데요. 로봇 산업이 뜨면 이런 고민도 필요 없어지겠죠.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삼성전자는 과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죠. 사실 자동차가 가장 큰 로봇 산업이기도 합니다. 자동차에 똑똑한 인공지능을 넣으면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는데. 지금처럼 일부 자율주행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행이 된다면 세상이 바뀔 거예요.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자동차가 바퀴로 가는 게 아니라 네 발로, 혹은 두 발로 간다거나. 심지어 날아다닌다면. 사람 싣고 다니는 로봇이 되겠죠. 테슬라, 현대자동차 같은 자동차 회사도 궁극적으로 이런 걸 꿈꾸고 있어요. 또 삼성전자나 애플도 언제든 로봇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 기술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있습니다.
삼성이 뭘 봤길래…'이 회사'에 로봇의 미래를 걸었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보행 기술을 활용해 삼성전자 로봇이 나올 날을 기대합니다. 삼성이 점찍은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봇 산업의 테슬라 될지 눈여겨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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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김수영 PD
촬영 박지혜·신정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