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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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찾은 서울 봉익동 종로 귀금속거리는 한산했다. 봄철 결혼 성수기를 앞두고도 예물을 맞추기 위해 발품을 파는 예비 신혼부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년 새 혼인율이 반토막이 난 탓에 귀금속거리를 찾는 20~30대의 발걸음은 끊기다시피 했다. 현장에서 만난 A 귀금속점 사장은 "핵심 고객층이 사라져 아쉽다"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종로 귀금속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푸념했다.

예물주얼리는 혼인율 급감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산업이다. 지난 10년 새 다이아몬드 반지 등 예물 소비가 확 줄면서 시장 규모 역시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전체 주얼리 시장은 수입 명품 소비에 힘입어 급성장하는 추세다. 인구 구조와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주얼리 시장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서울 봉익동 종로귀금속거리 상점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민경진 기자
22일 서울 봉익동 종로귀금속거리 상점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민경진 기자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예물주얼리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5.9% 감소한 8197억원으로 조사됐다. 통계를 쓰기 시작한 201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2년(1조6049억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예물주얼리 시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다이아몬드 시장은 지난해 4573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35.6% 급감했다.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소장은 "한 쌍당 예물주얼리 평균 구매 비용 역시 조사 이래 가장 낮았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혼인 감소로 소비층이 사라진 탓에 예물주얼리 시장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내 혼인 건수는 1996년 43만5000건으로 정점을 찍고 꾸준히 감소했다. 마지막 연간 통계인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혼인 건수가 15분기 만에 처음 소폭 반등했지만, 코로나 기저 효과일 뿐 혼인 감소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종로 귀금속거리의 상인들은 이런 산업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귀금속 도소매 상점과 세공소 3000여 개가 모여 단일 귀금속 상권으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곳이다. 지금은 서너 집 건너 한 집꼴로 '임대' 딱지가 붙어 있을 정도로 불황의 골이 깊다. 서울시에 따르면 종로3가역 인근에 새로 생긴 시계·귀금속 점포의 5년 이상 생존율은 64.8%다. 개업 5년 후 점포 3개 중 1개는 폐업한다는 얘기다.

2016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전체 주얼리 시장은 지난해 크게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시장 규모는 6조342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8% 성장했다. 비예물 주얼리 가운데 금·백금 등으로 만든 일반주얼리가 전년 대비 1조1652억원 증가한 4조9074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금값이 폭등으로 소매가가 상승한 영향"이라고 귀띔했다.

수입산 명품 주얼리의 소비가 늘어난 것도 전체 시장이 성장한 배경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얼리 수입액은 10억7082만달러(약 1조4000억원)로 사상 최대였다. 수입산 주얼리의 3분의 2는 명품 브랜드가 대거 포진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미국에서 건너온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폭발하면서 백화점 등에서 명품 주얼리 소비가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클리프아펠, 까르띠에 등 명품 주얼리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매장이 열리는 순간 바로 입장)은 흔해졌고, 그래도 재고가 부족해 헛걸음을 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백화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명품 소비는 전년보다 24% 증가한 168억달러(약 21조8800억원)로, 1인당 325달러(약 42만원)꼴이었다.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을 제치고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액이 가장 많은 국가에 올랐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