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익명 커뮤니티 플랫폼 블라인드가 미국에서도 직장인 필수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1000대 기업의 직장인 90% 이상이 이미 가입한 서비스죠. 미국에서도 주요 기업의 사내 소식을 외부에서 알게 해주는 서비스로 성장했습니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가 해외에서 성공한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최근 블라인드는 수백만 명의 이용자를 바탕으로 채용 플랫폼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를 최근 만났습니다.

미국에서도 통한 블라인드

팀블라인드가 지난해 출시한 치약과 칫솔을 소개하는 문성욱 대표. 디자인에 블라인드의 슬로건인 ‘Your voice matters’(당신의 목소리는 중요하다)를 반영해 입 모양을 강조했다. 팀블라인드는 해당 제품을 판매한 수익에서 제작 실비를 제외한 전액을 한국생명희망존중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팀블라인드가 지난해 출시한 치약과 칫솔을 소개하는 문성욱 대표. 디자인에 블라인드의 슬로건인 ‘Your voice matters’(당신의 목소리는 중요하다)를 반영해 입 모양을 강조했다. 팀블라인드는 해당 제품을 판매한 수익에서 제작 실비를 제외한 전액을 한국생명희망존중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가 18일 정리 해고에 나섭니다”

지난 1월 MS 직원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 MS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세상에 알렸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관련 내용을 앞다퉈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자 “인정 있고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직장 문화가 완벽하고 빠르게 파괴됐다” 등 회사 직원의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에서도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회사 내부 사정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모두 익명 게시판 서비스 블라인드에서 직장인들이 올린 게시글이 출처다. 블라인드는 미국에서도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무기력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창구로 성장했다.

블라인드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는 지난 1월 기준 920만 명이 넘는다. MAU는 특정 가입자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용했다는 뜻이다. 가입만 하고 사용하지 않은 인원은 제외하기 때문에 실제 이용 정도를 파악할 때 활용하는 지표다. 블라인드의 미국 MAU는 4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국 인터넷 서비스 중에서 게임 외에 이렇게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서비스는 드물다. 게다가 블라인드는 직장인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 확보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수백만 명이 이용한다. 우버와 메타(옛 페이스북) 직원의 블라인드 가입률은 80%가 넘는다.

성공 비결은 한국과 비슷하다. 직장인이 원하는 정보를 블라인드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테크 기업의 대규모 해고 움직임에 구글에서는 하루 동안 1000명 이상이 신규 가입했다. MS에서는 일주일 동안 6000명가량의 직원이 블라인드를 처음 찾았다. 메타는 대량 해고 발표 이후 일주일 동안 7000명의 직원이 블라인드에 신규 가입했다. 대부분 회사 내부 소식과 이직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블라인드를 찾았다.

직장인이 익명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블라인드 인기 요인이다. 블라인드는 한국에서처럼 미국에도 직장 생활을 개선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7년 우버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사내 성희롱 행태를 잇따라 고발해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기도 했다.

미국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블라인드는 올해 출시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서 2013년에 나왔고, 미국 버전은 2015년에 출시됐다.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  /임대철 기자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 /임대철 기자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는 미국 시장 진출 성공 비결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저돌적인 한국식 마케팅과 업의 본질에 집중한 것. 문 대표는 “미국 초기 공략 전략이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우리만큼 블라인드를 신뢰하는 코어 그룹 만드는 것이죠. 회사에서는 ‘신뢰의 피라미드’라고 부르죠. 직장인 서비스는 가입자의 신뢰 없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팀블라인드를 창업하기 전에 네이버와 티몬에서 근무했던 문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블라인드를 만들고 이전 직장 동료에 블라인드를 적극 알렸다. 네이버와 티몬의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국내 다른 기업에도 블라인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맨땅에서 얻은 직장인의 마음

팀블라인드는 미국에서도 우선 핵심 이용자 확보에 나섰다. 생계가 걸린 회사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쉽지 않다. 이용자가 서비스의 익명성을 믿어야 한다. 팀블라인드는 '맨땅'에서 시작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확실한 타깃을 노렸다.

팀블라인드는 미국 서비스 초기인 2015년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장소는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택했다. 아마존의 한국계 직원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면서 블라인드를 알렸다. 당시 아파트 대여비는 회사 예산으로 보면 상당히 비쌌지만 팀블라인드는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했다.

문 대표는 “직장인 대상 서비스는 1000개 기업에서 1명씩 가입하는 것보다 1개 기업에서 1000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용자가 서비스를 계속 찾게 만들려면 이용자끼리 공감대가 필수고, 할 얘기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직원은 구글 직원에 궁금한 것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아마존 같은 미국 상위 정보기술(IT) 업체의 직원이 많이 쓰는 서비스라고 알려지면 이용자 확보가 쉬울 것이라고 팀블라인드는 생각했다.
돼지김치찜을 직접 만든 김성겸 팀블라인드 공동창업자. 팀블라인드는 2015년 블라인드를 미국에서 알리기 위해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빌려 한국계 아마존 직원 대상으로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팀블라인드 제공
돼지김치찜을 직접 만든 김성겸 팀블라인드 공동창업자. 팀블라인드는 2015년 블라인드를 미국에서 알리기 위해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빌려 한국계 아마존 직원 대상으로 돼지김치찜 파티를 열었다. /팀블라인드 제공
다음 타깃은 MS였다.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다른 방법도 활용했다. 이번에도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MS 주차장에서 서비스 설명이 적힌 '찌라시'를 직원들에게 돌리고 여기저기 붙였다. 팀블라인드 직원들은 찌라시를 돌리다가 발견한 MS의 1호 가입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가입자는 바로 늘기 시작했다. 당시 MS 직원 게시판에는 ‘어떤 미친 X들이 회사 주차장에 이런 걸 뿌렸는데 보러 왔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블라인드를 써본 MS 직원들이 '블라인드에서는 아마존 직원과 대화도 가능하다'고 알려지면서 MS 직원의 가입자가 급격히 늘었다.

문 대표는 “소비자는 서비스(기업)가 선전하는 말을 잘 믿지 않아요. 동료나 친구의 말은 믿죠. 아마존, MS 이용자가 늘어났고 트위터, 메타, 구글, 우버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했어요. 미국에서는 이직이 잦아 블라인드 확산 속도가 한국보다 빨랐죠”

경쟁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블라인드 출시 이전에도 있었고, 블라인드의 성공에 후발 서비스도 잇따라 나왔다. 하지만 팀블라인드는 조급하지 않았다. 대신 익명 직장인 게시판이라는 특성에 더욱 집중했다. 문 대표는 “서비스가 천천히 성장해도 직장인들이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회사에서는 이걸 ‘꾹꾹 눌러 담아서 성장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회사보다 이용자의 입으로 서비스가 퍼져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경쟁업체는 대부분 인터넷 서비스의 전형적인 이용자 확보 방식을 택했다. 외부에서 대규모로 투자를 받고, 이용자 확보를 위해 마케팅비를 시장에 투입한다. 이용자를 확보한 다음에는 이를 바탕으로 다시 투자를 받는 식이다.

문 대표는 “이런 방법은 짧은 기간에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지만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어려워 지속되기 어렵다”며 “팀블라인드는 한국 시장을 통해 사용자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알았고 미국에서도 여기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마케팅 방식을 택한 업체들의 서비스는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경쟁사는 흉내 내기 어려운 채용 플랫폼

블라인드의 채용 서비스 블라인드 하이어.
블라인드의 채용 서비스 블라인드 하이어.
팀블라인드는 최근 채용 플랫폼 강화에 나섰다. 팀블라인드는 2021년 경력직 이직 플랫폼 '블라인드 하이어'(Blind Hire)를 정식 출시했다. 이 서비스에 가입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기업이 직접 이직을 제안하는 스카우팅 서비스다.

팀블라인드는 최근 채용 플랫폼을 개편했다. 블라인드 이용자 누구나 채용 공고를 볼 수 있는 '잡보드' 방식으로 관련 서비스를 바꿨다. 블라인드 이용자는 블라인드 하이어에 따로 가입하지 않아도 각종 채용 공고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문 대표는 "2020년 채용 플랫폼 사업을 시작해 3년간 시장에서 검증했다"며 "기존의 폐쇄적 일자리 제안 방식의 단점은 개선하고 더 많은 기업과 구직자에게 매칭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잡보드로 채널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하이어의 강점은 채용 공고의 노출 대상이 넓다는 것이다. 다른 채용 플랫폼은 보통 적극적인 구직자가 이용한다. 주로 이직하려는 직장인과 구인 기업의 인사 담당자만 찾기 때문에 이용자가 한정적이다. 반면 블라인드 하이어는 구직에 적극적이지 않은 직장인까지 공략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블라인드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한 이용자들까지 채용 공고에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는 구직에 적극적이든 아니든 모든 직장인에게 채용 공고를 노출하고 싶어한다"며 "직장인이 블라인드처럼 다른 채용 플랫폼을 매일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블라인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업 정보도 구직자에게 도움이 된다. 구직자는 이직하려는 회사의 처우와 분위기 등의 정보를 해당 기업의 블라인드 이용자를 통해서 직접 얻을 수 있다. 블라인드는 사내 문화, 급여 및 복지, 업무와 삶의 균형 등 항목에 따른 회사별 평점 리뷰 서비스도 제공한다. 문 대표는 "블라인드는 왜곡이 가장 없는 기업 정보를 유통하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  /임대철 기자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 /임대철 기자
팀블라인드는 올해 미국 중심으로 해외 시장 공략도 강화한다. 현재 미국 블라인드 이용자는 미국 서부의 테크 기업 종사자 비중이 크다. 올해는 다른 업종과 지역으로 이용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문 대표는 "콘텐츠의 개인화 수준을 높여 정보기술(IT) 외 업종 직원들의 이용 시간도 늘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의 직장, 이용 패턴 등을 인공지능(AI) 등으로 분석해 특정 이용자에게 관심 있는 콘텐츠를 선별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팀블라인드는 이런 서비스 개선을 위해 최근 데이터 분석 전문가 등을 추가로 채용했다. 문 대표는 "블라인드는 여전히 완벽한 익명 서비스지만 이용자의 패턴 등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블라인드를 전 세계 직장인의 SNS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또 블라인드 하이어는 한국과 미국에서 사무직 직장인 대상으로 압도적인 1위 채용 플랫폼 서비스로 키울 계획이다. 문 대표는 "직장인이 행복하고 회사도 만족하는 채용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 맞는 업무와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라며 "블라인드는 이런 채용 문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