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은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신입사원은 과장의 자세로, 과장은 부장의 자세로, 부장은 임원의 자세로 일해야 회사가 발전한다.” 요즘 누가 이런 말을 한다면 왕따당하기 딱 좋을 것이다. 근래 직장인 사이에선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생각이 주류에 가깝다. 이른바 ‘조용한 퇴사’다. 진짜 사표를 낸 건 아니지만 회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적당히 할 일만 하는 세태를 일컫는 말이다. 기업 경영자들은 조용한 퇴사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조직 문화를 해칠까 걱정한다. 해법은 없을까.

월급을 더 주면 더 열심히 일할까

조용한 퇴사는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다. 기업 경영자와 관리자는 직원들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직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려고 한다. 일부에선 조용한 퇴사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특성인 것처럼 말하지만 적당히 눈치껏 일하려는 것은 직장인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이 제시하는 해법 중 하나는 효율 임금이다. 효율 임금 이론은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 근로자의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보는 이론이다.

높은 임금이 근로자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열심히 일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월급을 많이 주면 이직률이 낮아지고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기 쉬워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거 포드자동차 사례가 효율 임금 이론을 뒷받침한다. 포드는 근로자에게 경쟁사의 두 배가 넘는 하루 5달러의 임금을 줬다. 포드의 정책은 회사에 대한 근로자의 충성도를 높여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저서 <규칙 없음>에서 “최고 인재에게 고액 보수를 지급하고 계속 올려주는 것이 훌륭한 인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돈 더 준대도 일 안 하겠다는 이유

높은 임금이 근로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학의 연구 결과는 돈으로 근로 의욕을 자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시장과는 다른 노동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장의 공급곡선은 우상향한다. 가격이 높아지면 공급도 늘어난다. 하지만 노동 시장에서는 가격(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공급(근로 시간)이 오히려 줄어든다. 공급곡선이 우상향하다가 좌상향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근로 시간이 여가와 대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취미생활 등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더 하기보다 돈은 적당히 벌면서 여가를 즐기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임금 상승에 따라 노동 공급이 늘어나다가 어느 시점부터 줄어드는 현상을 노동 공급곡선의 후방 굴절이라고 한다.

신용석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논문 ‘근로자들은 어디에 있나? 대사직부터 조용한 퇴사까지’에서 조용한 퇴사가 미국 고소득층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노동 공급의 후방 굴절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돈보다 칭찬이 좋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 근로자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다른 수단은 없을까. 댄 애리얼리 듀크대 심리학과 교수가 인텔 이스라엘 공장에서 한 실험이 있다. 그는 직원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업무 성과에 따라 각기 다른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한 그룹에는 30달러를, 다른 한 그룹에는 피자 쿠폰을 주기로 했다. 나머지 한 그룹에 주어질 인센티브는 상사의 칭찬 메시지였다. 실험 결과 세 번째 그룹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가장 높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지난해 ‘조용한 퇴사의 원인은 나쁜 직원이 아니라 나쁜 상사’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좋은 평가를 받는 관리자의 부하 직원 중 조용한 퇴사를 하는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좋은 상사의 부하 중 62%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반면 나쁜 평가를 받는 관리자의 부하 직원 중에서는 14%가 조용한 퇴사 중이었다.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람은 20%밖에 안 됐다. 많은 직장인이 돈 주는 만큼만 일하겠다고 말하지만, 조용한 퇴사는 단지 돈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