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한국 기업이 외화채 발행시장에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4일 포문을 연 데 이어 9일 포스코, 10일 SK하이닉스가 달러채 발행에 성공했다.

연초 韓기업 외화채 '흥행몰이'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전날 외화채 조달을 위해 실시한 수요예측(북빌딩)에 154억달러(약 19조15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SK하이닉스는 수요예측 결과를 토대로 총 25억달러(약 3조10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했다. 3년 만기 7억5000만달러, 5년 만기 10억달러, 10년 만기 7억5000만달러 등이다.

주문이 몰리면서 금리도 처음 제시한 수준보다 0.4~0.5%포인트 낮아졌다. 3년 만기는 미국 국채 금리에 2.4%포인트, 5년 만기 2.75%포인트, 10년 만기는 3.10%포인트를 가산했다. 최종적으로 6.25~6.50% 사이에서 금리가 결정됐다.

SK하이닉스의 신용등급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기준 BBB-로 높지 않지만, 수출입은행과 포스코에 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물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지난해 흥국생명 사태로 한국물의 크레디트 스프레드(미국 국채 금리와의 차이)가 커지자 우량한 한국 회사채를 좋은 가격에 담기 위한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기관의 자금 집행이 집중되는 ‘연초 효과’도 톡톡히 누린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은 4일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정부채를 제외하고 역대 최대인 35억달러 규모 글로벌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포스코가 발행한 20억달러 외화채도 그룹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물에 대한 투자 수요가 살아나면서 다른 기업도 줄줄이 외화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하이닉스 외화채 서로 "사겠다"…300여 곳 주문

SK하이닉스가 발행하는 외화채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더 끈 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주목하는 글로벌 투자자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번 발행에서 5년물은 지속가능연계채권(SLB)으로 구성했다. 목표액은 5억달러였지만 304개 기관투자가가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여 발행 규모를 10억달러로 늘렸다. SLB는 자금 소요처에 제한을 두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성과를 채권 금리에 연동시키는 방식의 채권이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 경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채권 이자율이 0.1%포인트 오르는 식이다. 10년물은 그린본드(녹색채권)로 발행됐다. 그린본드는 발행 대금을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투자에만 써야 한다.

연초 외화채 발행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계속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Fed 인사들은 ‘피벗(통화정책의 방향 선회)’에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한국물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흥국생명 사태를 우량한 한국물을 싸게 담을 기회로 보고 자금 집행이 재개되는 연초에 한국물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는 부담감에 금리를 여유 있게 제시하는 것도 수요가 몰리는 요인이다.

한국물은 미 국채와의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중국에 비해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투자등급(BBB- 이상) 회사채의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지난해 11월 1일 한국이 2.07%포인트로 중국(2.23%포인트)을 밑돌았으나 두 달 새 역전되면서 매력도가 높아졌다. 지난 4일 기준 한국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1.80%포인트로 중국(1.66%포인트)을 웃돌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외화채 발행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 한국전력, 현대캐피탈 등이 조만간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타이어, GS칼텍스, 산업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미래에셋증권, 한국도로공사 등도 외화채 발행에 나설 것으로 투자은행(IB)업계는 보고 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