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제 해상운임 급등에 힘입어 1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HMM의 올해 실적은 안갯속이다. 경기 침체 여파로 작년 대비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할 것은 분명하지만, 감소폭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석 달 전인 작년 10월 초 증권가에서 예측한 HMM의 올해 영업이익은 5조6434억원. 하지만 이달 초 컨센서스는 2조8074억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HMM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급락하고 있는 해상운임이 언제 바닥을 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5878억 흑자→1.3兆 손실…환율·유가 요동에 기업들 '망연자실'

“얼마나 감소할지가 관건”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세 곳 이상의 실적 추정치가 있는 국내 211개 상장기업(금융회사·공기업 제외)의 지난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188조6328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65조2110억원으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 여파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작년 대비 올해 실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던 작년 초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경제신문이 50개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시행한 새해 경기진단 긴급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영업이익이 작년과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64%에 달했다. 통상 기업은 매년 말 이듬해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를 조금이라도 늘려 잡는다. CFO들의 절반 이상이 올해 실적이 작년과 비슷하거나 감소할 것이라고 답한 것은 그만큼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감소폭이다. 경기 상황에 더해 환율과 원자재값 등 각종 외부 변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하면서 컨센서스도 매달 추락하고 있다. 석 달 전과 현재 전망치를 비교하면 27조9460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전체 영업이익 컨센서스의 14.5%가 석 달 새 증발한 것이다. 통상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에 비해 변동폭이 작은 1분기 컨센서스도 예상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석 달 전만 하더라도 올 1분기에 5878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달 초엔 1조29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컨센서스도 8조7186억원에서 5조7252억원으로 34.3% 급감했다.

“섣불리 예상했다간 망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반도체 △자동차 △항공·해운 △정유·화학 등 주력 업종의 수출대기업 실적이 추락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실적이 악화하면 이들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실적도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과 자금시장 경색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 하락)이 더 이상 수출기업에 호재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졌다는 분석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이 이를 상쇄할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잇따라 구축하고 있어 환율 상승 효과는 과거처럼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외부 변수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한 대기업 전자부품 계열사인 A사는 작년 11월 말 세운 올해 경영계획을 수정하려던 작업을 최근 중단했다. 환율과 유가 및 물류운임 추이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획 수정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A사 CFO는 “환율 등 외부 변수를 섣불리 예상했다가 원가 분석에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며 “최소한 1분기까지는 경기 상황을 지켜본 뒤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