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본부가 24일 파업에 들어가며 조합원에게 “주유소 기름을 바닥내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화물연대 SK에너지·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GS칼텍스 지부 조합원에게 유조차(오일 탱크로리) 운행 전면 중단과 함께 모든 파업 차량에 기름을 가득 채워 ‘기름 부족’ 상태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투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파업 불참 차량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볼모로 잡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23일 “며칠 전 (화물연대) 본부에서 전국 지부에 유조차 운행 전면 중단과 함께 파업 차량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소속 유조차는 전국의 70%, 서울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 조합원은 약 2만5000명으로 알려져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길어지면 물류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화물연대는 부산 신항삼거리, 울산 신항, 군산항, 충남 당진 현대제철 정문, 포항 글로비스 사거리 등을 주요 투쟁 거점으로 삼아 이 일대에서 화물차를 도열한 뒤 ‘노숙 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주·정차 위반 과태료를 본부에서 대신 지출하겠다는 계획까지 조합원에게 전달했다.화물연대는 올해 말로 예정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정부·여당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타협안으로 제시했지만 화물연대는 거부했다.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해야 한다는 게 화물연대 주장이다.화물연대 외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가 23일 전면 파업을 벌였고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11월 25일), 서울교통공사(11월 30일), 철도노조(12월 2일) 등 노동계 파업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2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로비. 노동조합 소속 직원의 파업으로 업무가 지연된다며 양해를 구한다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의무기록 발급 창구 6개 중 3개가 닫혀 환자들은 두 시간 가까이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백내장 수술 기록을 뽑기 위해 병원을 찾은 이수길 씨(80)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앉아 있을 곳도 없다”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곳이 환자를 내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서울대병원 노조가 인력 확충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병원 행정서비스와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환자들의 피해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 1000여 명은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분회의 총파업은 지난 10일 1차 파업에 이어 13일 만이다. 이번 총파업에는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군 등 노조원 3900여 명이 참가했다. 의사 직군은 참여하지 않았다.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은 업무 상당 부분이 마비되면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불편을 떠안았다. 어머니를 부축해 병원을 찾은 강모씨(28)는 “어머니 수술 기록을 발급하기 위해 왔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먼저 보내드렸다”며 “어머니가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아픈 사람에게 가혹한 처사”라고 말했다.보라매병원 일부 진료과목은 파업에 대비해 새 입원 환자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환자와 보호자의 항의가 이어졌다. 노조는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 필요한 필수 인력은 제외하고 파업에 참여해 환자 의료 서비스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수 인력 규모 자체가 줄면서 환자들이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노조가 환자를 볼모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 요구사항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방안 마련’과 같이 시급하지 않은 이슈도 포함돼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 심정적으로 파업에 공감은 한다”면서도 “병원 직원에게 기후위기 교육을 하면서 그 내용을 노조와 논의하라는 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이번 파업은 하루에 그친 1차 파업과 달리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차 파업 이후 병원과의 교섭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조도 이날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공단에 임금 인상과 감원 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강원 원주 건강보험공단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이광식/구교범 기자 bumeran@hankyung.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23일 열흘간의 총파업에 들어갔다. 의료연대본부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이날 결의대회를 열어 총파업 시작을 알렸다. 24일 화물연대, 2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30일 서울교통공사 노조 총파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완성차업계 등 산업계는 대리기사를 모집하고 화물을 쌓아둘 장소를 구하는 등 ‘셧다운’에 대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철도노조 태업으로 승차권 취소대란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이 24일 태업을 예고한 가운데 승차권이 취소되는 등 파업 첫날부터 피해가 속출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황혜연 씨(30)는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취소됐다”며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결혼식에 가지 못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코레일에 따르면 24일 운행이 중단되는 열차는 무궁화호(경부·호남·장항선) 새마을호(장항선) 관광열차(S-트레인) 등 8편이다. 25일부터는 10편이 운행 중단된다.24일 예정된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으로 시멘트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화물연대는 조합원 2만5000여 명이 운송 거부에 나서 각 산업 현장을 봉쇄할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파업에 들어가면 비노조원 운송 차주의 운행을 방해하고 시멘트공장 출입로를 막아 운송을 마비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시멘트는 시멘트 운반 트레일러(BCT)와 철도, 선박 등으로 운반되지만 선박은 수출용으로만 사용돼 화물연대가 BCT 운행을 막으면 사실상 전국의 시멘트 이동이 차단된다.시멘트업계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현재 업계에는 오봉역 사망 사고, 유연탄 등 제조원가 상승, 시멘트 가격 인상 협상 답보 등 악재가 쌓여 있다. 화물연대 파업까지 덮치면서 4분기 실적 하락은 명약관화하다는 말이 나온다. 시멘트업계는 올 3분기 실적이 악화했다. 쌍용C&E는 올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361억원으로 47.2%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204억원으로 71.8% 급감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시멘트는 파업 때마다 볼모로 잡히는 인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전국 건설현장이 ‘올스톱’되면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고 말했다. 야적장 마련에 대리기사까지 모집완성차회사들도 화물연대 운송 거부에 대비해 대책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운송 거부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는 차량 출고와 탁송이다. 승용차를 한꺼번에 옮기는 카캐리어 기사들이 운송 거부에 전면 참여하면 심각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차량 인도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공장에서 신차가 제때 빠져주지 않으면 공간이 부족해 생산 라인까지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기아는 차량 출고가 막힐 경우에 대비해 야적장(공터)을 알아보고 있다. 경기 화성 등지에서는 공터를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광명 등은 공간이 많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임시방편으로 야적장에 신차를 쌓아놓는다고 해도, 이를 소비자에게 보내는 탁송도 문제다. 기아 관계자는 “카캐리어 운송 중단에 대비해 신차를 고객에게 배송할 대리기사를 모집하고 있다”며 “대리기사 모집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 배송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전국 31개 무역항을 관리하는 해양수산부는 지난 6월 파업 당시 1주일 만에 부산항 장치율(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보관된 컨테이너 비율)이 80%에 육박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해운물류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비상수송대책반을 가동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면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가동할 계획이다. 통상 장치율이 80%를 넘으면 물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장강호/곽용희/강경주/황정환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