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에너지 안보 위기가 기회…탈원전으로 무너진 원전 부활시킬 것"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사진)은 “네덜란드, 핀란드, 벨기에, 카자흐스탄, 베트남,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과도 원전 수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유럽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한국형 원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안보 위기가 한국 원전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게 황 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서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한국 원전 산업을 부할시키겠다는 각오다.

국내 최고의 사용후핵연료 전문가로 손꼽히는 황 사장은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다가 지난 8월부터 한수원을 맡아 한국 원전 산업을 최전선에서 지휘하고 있다. 지난 1일 한수원 경주 본사에서 만난 황 사장은 “원전수출, 신고리 3·4호기 건설재개, 차질없는 원전 계속운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뛰어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한수원 직원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원전 수주에 대해 평가해주십시오.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원전 2~4기를 짓는 사업의향서(LOI)를 체결한 것은 원전 수출을 위한 큰 이정표입니다. 앞으로

폴란드 국민들이 깨끗하고 경제적인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신규 원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폴란드 외에도 한국형원전(APR1400)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헛되지 않도록 한수원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한국 원전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성공적인 건설로 예산과 공기를 준수하면서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한국의 사업관리 역량이 전세계에 입증됐습니다. 가격 경쟁력에서도 경쟁국인 미국과 프랑스에 비해서 한국이 월등히 우월하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경제성을 겸비한 원전을 적기에 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전세계가 한국 원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한수원과 민관이 합심해 팀코리아를 꾸려서 원전 수출을 가시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합니까.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원전 사용을 위해선 고준위 방사능폐기물처리장(방폐장) 건설은 필수적입니다.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을 활용하면 현재 37년으로 계획된 방폐장 설치 기간을 30년 정도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지하연구시설 실험 결과를 토대로 비슷한 지질환경에서 더 신속하게 방폐장을 건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추진 중인 기존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을 위한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일은 주민들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중간저장시설과 고준위방폐장 설치를 위한 특별법 통과를 서둘러 건식저장시설이 임시시설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리는게 중요합니다.”

▷신규원전 건설 계획이 있는지요.

“아직 신규 원전 건설을 이야기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의 경우 절차를 지키되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최대한 줄여 착공시기를 2024년으로 앞당기는 게 목표입니다. 다만 에너지의 전기화가 가속화되면서 전력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으로 추가 전력설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신규 원전을 단계적으로 추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수발전 확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뭔가요.

“신재생 확대에 따른 전력 계통망 불안정을 보완하기 위해 (수력을 이용한) 양수발전을 늘려야 합니다. 양수발전은 가장 친환경적인 배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전기가 남아도는 밤에 댐 위로 물을 끌어 올렸다 전기가 부족할 때 물을 흘려보내 전력을 생산하는 양수발전은 값비싼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양수발전을 충분히 짓는 것은 한수원이 국가 전력공급망 안정에 나름의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형모듈원전(SMR)의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SMR과 열병합발전소를 포함하는 에너지 자립도시를 만들어 수출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도시에 SMR을 설치하려면 주민수용성 문제가 생기지만, 신도시 에너지 공급 수단으로 SMR를 넣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 모델이 성공하면 (한국에) 역수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연성과 안전성이 높은 SMR은 신재생에너지와 최적의 조화를 이루면서 탄소중립 실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탈원전 등 에너지의 정치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요.

“절대적으로 나쁜 에너지도 좋은 에너지도 없습니다. 석유도 처음에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쓰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신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에 장마가 50일 넘게 이어진 적이 있습니다. 만약 태양광 발전에만 의존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아마 전력대란이 벌어져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을 겁니다. 그래서 원전을 포함해 한 가지 에너지원에만 올인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에너지믹스를 찾아나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주=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