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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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묵언 기간(blackout period)'에 돌입했다. 묵언 기간이란 기준금리 결정을 내리는 금통위 전 일주일 정도로,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을 삼가는 기간을 말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물가상승률이 5% 이상 지속되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6%로, 이 총재가 제시한 기준금리 인상 조건에 부합한다.

하지만 10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지, 0.25%포인트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밟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묵언 기간 전후로 통화 정책에 정반대로 영향을 주는 돌발변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①물가는 여전히 고공 행진

우선 물가는 한은이 빅스텝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6%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8월(5.7%)보다는 상승세가 소폭 둔화했지만, 석유류·농산물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4.5%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이 통계청 발표 직후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수요 측 물가 압력을 반영하는 개인 서비스 물가는 상당 기간 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전망"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실제 개인 서비스 물가는 6.4% 오르며 지난 8월(6.1%)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외식 물가상승률은 9%로, 1992년 7월(9%) 이후 3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②OPEC+ 감산 결정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다음 달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배럴 줄이기로 하면서 유가가 오르는 것도 한은에는 고민거리다.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을 올려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23.7달러까지 치솟은 뒤 최근에는 70달러대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OPEC+의 감산 결정 이후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69센트(0.79%) 상승한 배럴당 88.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은 산유국들의 감산 소식에 나흘 연속 올랐는데 상승률은 11.27%에 달한다.

한은은 향후 물가 경로와 관련, "유가 등 국제원자재가격 및 환율 추이, 국내외 경기상황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③경상수지 적자 전환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지난 8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선 것은 한은이 큰 폭의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 전환은 경기 침체의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7일 한은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는 30억50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4억9000만달러나 감소한 수치다. 상품수지가 1년 전보다 104억8000만달러 줄어든 44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영향이 컸다.

특히 반도체 등 주력 품목과 가장 큰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향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는 요인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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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환율 하락세 보이지만…

원·달러 환율은 지난 29일부터 5거래일째 하락세를 보이면서 1400원 초반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1439원90전까지 고점을 높인 원·달러 환율은 1450원과 1500원까지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달러 강세가 주춤하고,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 역시 하락세를 보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율의 특정 수준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한은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의 하락세가 일시적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것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이 열린 뒤 10원45전 급등한 1412원85전에 거래되고 있다. 금통위 후 3주 뒤인 다음 달 2일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예정돼 있다. 회의 결과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또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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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호주 빅스텝 중단

호주 중앙은행이 빅스텝을 중단하면서 한은에도 '베이비스텝'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중앙은행은 지난 4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2.6%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필립 로우 호주 중앙은행 총재는 "단기간에 크게 기준금리가 올랐다"며 "인플레이션과 호주 경제성장 전망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앞서 4개월 연속 빅스텝을 단행했다.

물론 로우 총재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물가가 더욱 상승할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은 역시 베이비스텝을 단행하되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노무라는 지난 5일 보고서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연준의 최종금리 상향조정에 대해 언급한 후 시장은 10월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50bp(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노무라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25bp(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무라는 50bp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약 45%로 보고 있고 25bp 금리 인상에 매파적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가능성은 55%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무라는 "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2개월간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면서 한은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이라며 "이는 성장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노무라는 원화 약세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는 한국은행 국정감사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