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인도 벵갈루루무역관장
김동규 인도 벵갈루루무역관장
14억 인구의 인도는 1인당 연평균 소득이 2200달러에 불과하다. 인도 시장을 보는 한국의 시각도 아직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인구는 많지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2200달러보다 더 중요한 숫자는 14억 명이다. 인구가 많은 만큼 ‘지갑’이 두툼한 소비자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인도는 전체 인구의 30%인 약 4억2000만 명이 전체 소득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000달러 수준이다. 경제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가져가는 4억2000만 명이 여유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이고, 이 중 상위 자산가들의 소비가 인도의 고급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최근 인도 소비 시장의 동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소비의 온라인화를 들 수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인도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7억 명, 휴대폰 등록 대수는 15억 대를 넘어섰다. 연로한 시골 노인들도 휴대폰으로 도시로 간 자식들과 통화한다. 은행 거래나 마트에서의 결제 역시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비대면 거래가 한층 더 활발해졌다.

두 번째는 소비시장의 고급화다. 인도는 1991년 시장 개방 이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최소 7% 이상 성장했다. 하위 70%인 10억 인구의 삶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성장의 과실을 누려온 상위 30%는 삶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10년 전 델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주변에 너무 잘사는 인도인이 많다. 이들이 이끄는 소비의 힘으로 갈수록 고급 제품과 고급 서비스, 명품 소비가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기업들에 의미 있는 시장 변화는 한류 확산이다. 인도인들은 유튜브의 BTS 동영상,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한류 팬덤’이 형성되는 단계다. 최근 이곳 신문에는 한국 여배우를 모델로 한 해외 명품 시계 광고가 1면에 등장했다. 해외 명품 업체들이 인도 시장을 한류 스타가 모델이 되는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인도에서 사치품이나 명품은 주로 결혼식 예물로만 사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런 공식이 깨졌다. 대도시 부유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글로벌 명품 소비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인도의 명품시장 규모는 지난해 60억달러에 달했다. 앞으로 매년 8%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가방, 의류, 시계 등 장식품뿐 아니라 자동차, 주택, 서비스 등 생활 전반에서 소비의 고급화가 인도 시장을 이끌고 있다. 오가는 출장길과 여행길, 고용하는 직원들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여유롭게 잘사는 인도’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시장과 고객은 바로 이런 여유로운 소비층이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경쟁력 있게 제공할 수 있다면 인도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여유 소비가 가능한 4억2000만 명을 겨냥해 품질과 브랜드 고급화에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