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일본 도쿄의 한 외환중개업체 사무실의 전광 시세판에 달러당 136엔대로 올라선 엔-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일본 도쿄의 한 외환중개업체 사무실의 전광 시세판에 달러당 136엔대로 올라선 엔-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초 미국 주식을 정리한 직장인 임모씨(39)는 최근 증권사 예치금을 엔화로 환전해 넥슨재팬과 닌텐도 등 일본 주식을 샀다. 투자하고 남은 1000만원가량도 엔화로 바꿔 환율이 2% 이상 반등할 때 되파는 단타 투자를 하고 있다. 임씨는 “일본 주식이 한국 주식보다 안전해 보이는 데다 환율 때문에 더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라며 “엔화 단타 투자만으로도 한 달에 30만원가량 수익이 나 용돈 벌이로도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엔화 환율이 5년 만에 최저 수준인 100엔당 900원대 중반까지 떨어지자 엔화 관련 재테크에 나서는 개인이 늘고 있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5월 중 거주자 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5월 말 국내 거주자 엔화 예금 잔액은 총 54억8000만달러(약 7조456억원)로 작년 말(52억5000만달러)과 비교해 외화 예금 가운데 유일하게 잔액이 늘었다.

여행 자금을 엔화로 모으는 2030 직장인과 학생도 늘었다. 일본은 지난 10일 단체 여행객을 받기 시작한 데 이어 조만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모씨(35)는 “하반기 휴가 때 쓰려고 일본행 비행기표를 사뒀다”며 “환율 930~950원대에서 엔화를 적금처럼 사 모으고 있는데 그사이에 수익이 안 나도 여행 경비로 쓰면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건강식품을 비롯해 위장약, 감기약, 파스 등을 일본에서 직구해 비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주부 박모씨(37)는 “위장약은 직구 비용을 감안하면 국내와 별 차이가 없지만 일본 내수용이 더 좋다는 말이 있고 여러 가지를 같이 사면 배송비를 줄일 수 있어 이득”이라고 했다.

개인들의 적극적인 투자 배경에는 ‘엔화=안전 자산’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이나 개발도상국 디폴트 사태와 같은 갑작스러운 경기 변동 때 원화에 비해 낙폭이 덜할 것이란 기대다. 엔화 가치가 최저점을 찍고 곧 오를 것이란 막연한 전망도 작용하고 있다. 엔화는 21일 전일 대비 1% 넘게 하락해 달러당 136.5엔까지 떨어지며 1998년 10월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에 이어 11년 만에 금리를 올린 유럽중앙은행(ECB)과 마찬가지로 일본 중앙은행(BOJ)이 제로 금리를 버리고 대세를 따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엔화 가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소한 올 3분기까지는 엔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최미선 하나은행 영업1부 PB센터지점 부장은 “엔화는 안전 자산이란 장점은 있지만 달러에 비해 예금 혜택도 없고 우대금리도 적다”며 “환율이 올라야만 수익이 나는 구조라 일반 투자 목적으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