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납기 지연 평균 4.5개월
장비 부품 상당수 해외에 의존
美점유율 37%·日 29%·유럽 19%
국내서 아예 못 만드는 것도 많아
공급난 닥치자 장비업체 '초비상'
디스플레이 생산 차질로 이어져
업계는 '협의체' 만들어 긴급대응
“전례 없는 ‘연쇄 공급망 붕괴’가 한국 디스플레이 시장을 덮치고 있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 내 조짐이 심상치 않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장비 부품 확보가 안 돼 장비 공급이 막히고, 디스플레이 생산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공급망 문제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자 대체 가능한 부품을 만들 기술도, 여력도 없는 한국 장비 부품업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실상의 근본 원인으로는 열악한 국내 ‘장비 부품 생태계’가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시장에서 한국산 부품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연쇄 붕괴…위기감 커져
27일 한국경제신문이 확보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디스플레이 장비 핵심 부품 시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의 국산화율은 9%에 그쳤다. 한국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는 핵심 부품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해 오고 있는 셈이다. 부품 시장 점유율은 미국산이 37%로 가장 높았고 일본산 29%, 유럽산 19% 등 순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 관련 국가별 점유율 등에 대한 분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스플레이 업체들 사이에 최근 “디스플레이 장비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제품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협회는 이 같은 실상을 파악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뒤엉켜 해외 장비 부품을 확보하지 못하자, 장비 납기까지 지연될 정도로 국내 부품 생태계가 열악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장비업체는 “핵심 부품 중 하나라도 납기 지연이 발생하면 장비 출하 일정을 지킬 수 없다”며 “길게는 1년까지 부품 확보가 늦어져 경영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약속 기한 내 납기’가 생명인 장비 수출이 막막해졌다는 토로도 이어지고 있다.
韓 공급량 ‘0’ 장비 부품도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5대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중 하나인 ‘터보 펌프’는 한국산이 전혀 없다. 영국산과 일본산 점유율이 각각 40%로 가장 많고, 독일산이 20%다. 3.5개월 걸려 받던 이 제품은 요즘 2.5개월 지연돼 6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다. 배관에 흐르는 가스 이물질을 모으는 ‘가스 필터’는 미국이 80%, 일본이 20%를 공급하고 있다. 이 부품의 납기 기간은 기존 2.5개월에서 11개월로 8.5개월 지연되고 있다. 이 밖에 진공 로봇, 모터 등도 종전보다 각각 2.5개월, 6개월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
장비 부품은 짧게는 6~12개월, 길게는 5년 주기로 교체가 필요하다. 대부분 장비업체는 장비 공급 후 부품 교체 등 사후 관리까지 담당한다. 질 좋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장비업체는 물론이고 디스플레이 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구조다.
부품 협의체 만든다
업계에선 납기 지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는 데다 물류비까지 올라 부품을 들여오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28일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장비 부품기업 40여 곳 등과 장비 부품 시장을 종합 진단하고 발전 방안을 논의할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동안은 장비 부품업계 관련 교류의 장이 없었다.
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상황에 따라 국내 장비업계가 휘청이지 않도록 부품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며 “장비 부품 개발 관련 공동 기술개발 등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장비 부품 경쟁력이 높아지면 장비업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업체도 보다 안정적·효율적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에서 한국 매출은 지난해 2억3300만달러(약 3019억6800만원)에 그쳤다. 2020년(23억3400만달러)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중국(105억2700만달러)과는 45배 넘게 차이 난다.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A사는 최근 디스플레이 업체인 B사에 “심각한 부품난으로 인해 이달 건식식각기 공급이 불가능해졌다”며 “연말께나 가능할 것 같다”고 읍소했다. 이 장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인 드라이 펌프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사는 당초 계획한 설비 교체와 증설 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27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선익시스템 등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이 부품을 구하지 못해 장비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해외에서 핵심 부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장비 핵심 부품은 평균 4.5개월 이상 납기 지연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엔 주문 후 2~3개월이면 공급받던 부품을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받고 있다. 통상 2.5개월 내 납품받던 필터는 1년 뒤에나 받을 수 있어 평상시보다 조달이 8.5개월 늦어지고 있다.부품이 동나면서 디스플레이 장비 공급은 물론 디스플레이 업체 증설까지 차질을 빚는 등 공급망 불안 여파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장비업계에선 부랴부랴 국내에서 대체 가능한 부품 업체를 수소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국 기업이 부품 공급을 맡으면서 국내 업체는 더 이상 부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어서다. 일부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산 중고 부품을 두 배 이상 웃돈을 주고 구입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처참한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업계 실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지난해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글로벌 공급망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기획재정부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공급망기획단)이 100일이 지나도록 인력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부처 대응이 필요한 이슈인 만큼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다른 부처에도 인력 파견을 요청했지만 이들 부처가 파견을 차일피일 미루면서다.산업부와 외교부는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보낼 사람을 정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직 공급망기획단에 인력을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24일 확인됐다.공급망기획단은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가 요소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불거진 요소수 사태에 대응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시킨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를 지원하는 임시 조직으로 출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이 일어나는 등 국제 환경이 급변하자 정부는 올해 3월 공급망기획단을 경제안보TF의 역할을 사실상 대체하는 정식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글로벌 공급망은 원자재부터 소재·부품·장비, 통상, 외교, 물류를 아우르는 복합적 개념인 만큼 범부처 조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정부가 밝힌 취지였다.정부는 경제안보TF를 이끌었던 기재부 1차관에게 단장을 맡기며 공급망기획단에 힘을 실었다. 기재부 국장급이 맡는 부단장을 포함한 기재부 실무자 10명과 산업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행정안전부에서 파견한 4~5명을 포함해 총 15명 수준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공급망의 핵심 축인 에너지·원자재를 맡는 산업부와 외교를 전담하는 외교부가 인력을 보내지 않으면서 ‘반쪽짜리’ 범부처 조직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관가에선 현재 공급망기획단의 모습이 정권 교체기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10일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부터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공급망 강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전 정권에서 만들어진 공급망기획단이 새 정부에서도 역할을 유지할지, 공급망 관련 컨트롤타워를 어느 부처가 맡을지에 대해 기재부와 산업부, 외교부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최근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대외경제장관회의로 규정하며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여전히 각론을 두고선 부처마다 ‘마이 웨이’를 가는 모양새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공급망 이슈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며 “각 부처 장관들이 부처 간 협력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호주를 방문해 리튬, 니켈 등 친환경 미래소재 사업의 전략적 투자 자산을 점검하고 원료 파트너사들과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최 회장은 20일 서호주를 방문해 호주의 자원개발 기업 핸콕(Hancock)의 지나 라인하트 회장을 만나 '리튬, 니켈, 구리 등 중요 금속과 철광석 등 광산개발 및 HBI 사업 추진에 대한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HBI(Hot Briquetted Iron)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환원)한 환원철을 조개탄 모양으로 성형한 가공품을 말한다.양사는 철광석 광산개발 및 철강원료 HBI 생산 등 철강 관련 사업에서 협력 범위를 확대해 리튬, 니켈 등 2차전지 원소재 광산 개발 및 가공 등 미래 사업 분야에서도 협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최 회장은 “포스코그룹과 핸콕은 2010년부터 협력 관계를 이어오며 로이힐 광산 개발 프로젝트 성공을 비롯해 최근에는 세넥스 에너지를 공동 인수하는 등 매년 협력 관계를 확대해오고 있다”며 “2차전지 원소재 개발부터 양극재, 음극재 등 제품 생산까지 밸류 체인을 갖춘 포스코그룹과 광산업에서 우수한 경험과 역량을 보유한 핸콕이 리튬, 니켈 등의 2차전지 원소재 사업을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최 회장은 21일 광산 개발 및 제련 전문 회사인 퍼스트 퀀텀 미네랄스(First Quantum Minerals) 회장 등을 만나 2021년 퍼스트 퀀텀 미네랄스로부터 지분을 인수한 니켈 광업 및 제련 전문 회사 레이븐소프(Ravensthorpe Nickel Operation)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고 추가 사업 협력 기회를 논의했다.리튬 원료 개발 및 생산 합작사업 등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는 필바라 미네랄스(Pilbara Minerals) 회장 등을 만나 리튬 정광 공급 확대와 신규 프로젝트 협력 등을 협의했다.최 회장은 원료 파트너사들과의 만남에 앞서 마크 맥고완 서호주 수상과 면담을 통해 “철강, 2차전지 원소재 뿐만 아니라 미래 청정수소 분야에서도 호주는 핵심적인 생산, 조달 국가가 될 것”이라며 “포스코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청정수소 사업의 중요한 파트너 국가로써 양국 기업간 기술 및 투자 교류에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포스코그룹은 철광석, 리튬, 니켈 등 원료 개발을 위해 호주에 4조원 이상을 투자해왔다. 호주가 넓은 부지와 풍부한 태양광, 풍력 자원과 함께 선진적인 법규와 제도 등 우수한 사업 환경을 갖추고 있어 해외 청정수소 개발에 최적화된 국가라고 평가하고 있다.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