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기준 잔액 중 77.3%…'빅 스텝' 밟으면 이자 6조7천억원 불어
은행 "당장 1%p 높아도 고정금리 안전"
KB, 1년여만에 '장기 고정금리' 적격대출 재개 검토

우리나라 가계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이 8년 1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이창용 총재를 비롯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은으로서는 물가 상승이나 미국의 통화 긴축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를 경우 상황에 따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한꺼번에 올리는 빅 스텝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77%가 넘는 변동금리 가계대출이 금리 인상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만큼, 빅 스텝에 따른 이자 부담 급증과 이에 따른 소비·경기 위축 위험도 심각하게 걱정할 수밖에 없다.
가계대출 변동금리 비중 8년1개월만에 최고…한은 총재도 '걱정'
◇ 이창용, 빅스텝 가능성에 "물가뿐 아니라 변동금리 많아 이자부담 고려"
26일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4월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은 77.3%로, 2014년 3월(78.6%) 이후 8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아졌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20년 1월(65.6%)과 비교하면 2년 3개월 사이 11.7%포인트(p)나 뛰었다.

한은의 '가계신용(빚)'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모두 1천752조7천억원에 이른다.

만약 한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고, 은행 외 금융기관의 변동금리 비중도 같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대출금리가 기준금리만큼만 올라도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6조7천478억원(1천752조7천억원×77%×0.50%)이나 불어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21일 빅 스텝 가능성에 대해 "빅 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며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변동금리 비중이 매우 큰 상황에서 금리 상승으로 예상되는 대출자들의 타격 정도가 향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하는데 주요 고려 사항이라는 뜻이다.

◇ 신규대출 80.8%가 변동금리…고정금리보다 1%p이상 낮기 때문
더 큰 문제는 최근 가파른 금리 상승에도 불구, 대출자들의 변동금리 선호 경향이 오히려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4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신규취급액의 80.8%가 변동금리였는데, 3월(80.5%)보다 0.3%포인트 또 높아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변동금리가 현재 고정금리보다 약 1%포인트나 낮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가 0.5%포인트 안팎 높았지만, 최근에는 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며 "대출자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아무리 염두에 둬도, 당장 1%포인트 이상 비싼 금리를 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24일 기준 연 4.750∼6.515% 수준이지만,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이보다 1%포인트 정도 낮은 연 3.690∼5.781%다.

[표] 시중은행 대출금리 추이
┌───────┬────────┬────────┬───────────┐
│ │2022년 6월 17일 │2022년 6월 24일 │하단,상단 변동폭 │
├───────┼────────┼────────┼───────────┤
│주택담보대출 │연 3.690∼5.681%│연 3.690∼5.781%│0%p, +0.100%p │
│변동금리(신규 │ │ │ │
│코픽스 기준) │ │ │ │
├───────┼────────┼────────┼───────────┤
│주택담보대출 │연 4.330∼7.140%│연 4.750∼6.515%│+0.420%p, -0.625%p │
│고정금리(은행 │ │ │ │
│채 5년물 기준)│ │ │ │
└───────┴────────┴────────┴───────────┘
※ KB·신한·하나·우리은행, 채권정보센터 자료 취합

◇ 연내 금리 최소 1%p↑…"단기대출 아니면 고정금리, 변동금리 대환도 검토"
하지만 은행들도 1년 안팎 짧은 만기의 대출이 아닌 경우, 당장 금리가 높더라도 고정금리를 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뛰는 물가와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등의 영향으로 연말까지 불과 6개월 사이 한은도 기준금리를 최소 1.00%포인트 정도는 더 올릴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면, 고정금리로의 갈아타기(대환 대출)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먼저 자신의 대출금리 가운데 가산금리가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대출 금리는 보통 '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로 산출되는데, 기준금리는 금리 변동 주기마다 새로 적용되지만, 가산금리는 대출 만기까지 고정된다.

따라서 새로 갈아탈 상품의 전체 금리가 낮아도 가산금리가 더 높다면, 일단 갈아타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갈아타기로 결정했다면 중도상환수수료와 대출 한도도 잘 따져야 한다.

통상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을 받은 날로부터 3년간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 금액이 대환으로 절감할 수 있는 이자 비용보다 크다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때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경우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한도는 대환 신청 시점에 시행되는 규제를 따르기 때문에, 대환으로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며 "더구나 오는 7월부터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한도와 관련한 은행 상담을 권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키에 더 안전한 고정금리 상품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2분기 이후 중단했던 '적격대출' 판매를 3분기에 재개하는 방안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적격대출은 10∼40년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으로, 대출자의 소득 조건은 없지만 대출 담보 주택가격이 9억원을 넘을 수 없다.

은행별 적격대출 수요를 조사해 할당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관계자는 "올해 적격대출 공급 계획 규모가 3조5천억원 정도인데, 은행의 수요가 늘어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