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인데도 백화점보다 비싸다고요? 안 살게요."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면세점 내 샤넬 매장 앞의 모습. 이미경 기자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면세점 내 샤넬 매장 앞의 모습. 이미경 기자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하늘길이 열리며 면세업계가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고환율 탓에 내국인 면세 소비심리가 얼어붙는 분위기다. 재고 부담으로 상품을 많이 들여놓지 않은 탓에 상품기획(MD) 측면에서도 크게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 없이 들어가는 샤넬 매장…손님 없어 한산한 분위기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면세점은 주말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샤넬매장은 백화점에서 연일 '오픈런(개점과 동시에 매장으로 뛰어가는 것)'이 벌어지는 것과 다르게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디올, 구찌 등 주요 명품 매장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날 카드지갑을 구매하기 위해 면세점 샤넬매장을 찾은 최모씨(34)는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이 없어 헛걸음하고 돌아왔다. 최씨는 "백화점과 달리 사람이 없어 입장도 쉽고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면서도 "원하는 제품은 매장에 없어서 구경만하고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최씨는 "매장 직원이 코로나19 이후 제품이 거의 안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며 "1~2달 뒤 매장을 방문해도 재고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을 둘러보니 소위 '인기 제품' '스테디셀러'라고 불리는 제품들은 하나도 없었다"며 "매장 직원이 '입장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백화점 매장을 방문해보실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600달러 이하 제품도 고환율에 백화점보다 가격 비싸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생로랑 매장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400달러대의 지갑 제품은 면세한도(600달러) 범위 내에 들어가는 제품인데도 백화점 가격보다 7만원가량 비쌌다. 매장 직원은 "환율이 너무 높다 보니 현재로서 면세쇼핑이 크게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라며 "심지어 이 제품은 진열용 제품일 뿐 면세점엔 재고도 없다"고 민망해했다.

면세업계는 엔데믹과 동시에 올해부터 바로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진 않았지만 고환율 악재가 겹치며 예상보다 실적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90% 가량을 담당하는 중국인이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내국인 수요라도 끌어올려야 하지만 높은 환율 탓에 면세 쇼핑의 가격 경쟁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00원까지 육박했다. 22일 기준 면세점 적용 환율은 1291원7전이다. 지난해 이 기간 대비 약 150원 오른 것으로,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면세업계는 환율 상승에 대한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보전해주기 위해 물품구입 가격에 따라 면세점 적립금을 지급해주는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면세업계 "회복 늦어질 수 있어 상황 주시"

면세점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구색을 갖추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은 백화점과 달리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사들인 뒤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이 물건을 판매하지 못하면 재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 때문에 면세업계는 외국인 입국자가 크게 증가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판매 품목을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내년이나 돼야 분위기가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며 "올해는 내년의 손님들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고환율로 내국인 수요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데다 코로나에 이어 원숭이두창까지 확산하고 있어 외국인 입국 회복이 늦어질 수 있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